[26/100] 도전 : 1일 1글쓰기 - 프로젝트 '좋아해'
아이들을 키우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애는 절대 못 키우겠다 깨닫게 된다. 육아와 살림 그리고 일까지 모든 걸 해치우는 고단함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어느새 엄마를 닮아 있는 걸 목격할 때, 한 아이의 세상이 된다는 것에 공포감이 밀려온다. 내 표정을 따라 하고 말투에 영향을 받고 사상에 생각을 정립한다. 나는 그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 아닌 걸 알아서 내 모든 걸 흡수한 또 다른 세상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맘이랄까.
한편 나도 엄마가 세상이었고, 지구였고, 우주였을 어릴 적을 생각해본다. 기억나진 않지만 이마를 들썩이며 미소 짓는 엄마 특유의 표정을 닮은 우리 삼 남매(뿐만 아니라 여동생의 아기들도 모두 대대손손 물려받았다)를 보면, 엄마도 엄마가 전부인 우리가 무서웠을까 궁금하다. 물론 진작에 '지들이 혼자 큰 줄 알고 잘난 체하는' 우리였지만.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모두 자취를 시작하며 부모님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독립하며 멀어져 갔다. 일상을 공유하는 건 귀찮았고, 틈마다 연락하는 건 부담스러웠다. 드디어 엄마의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우리만의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의 독립체로써.
그런데 인생의 고비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엄마를 찾게 되는 건 왜일까. 남들은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힘든 얘기는 안 한다는데 나는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조잘조잘 잘도 떠들어댄다. 이게 힘들고, 저게 힘들고. 나이가 들수록 엄마를 떠난 줄 알았던 내 세상은 다시 엄마로 향한다. 견고하고 한 번도 무너져본 적 없을 것 같은 엄마의 세상은 언제고 나를 받아줬다.
- 괜찮아. 잘된다고만 생각해.
-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 하나씩 적으면서 잘 생각해봐.
-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엄마가 도와줄 수 있어.
지난 4월 일을 그만두고 슬럼프에 빠져 여태 해온 일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내게, 엄마는 요즘 경제가 얼마나 안 좋은데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다그치지도 않고, 니 나이에 뭘 새로운 걸 한다고 그러느냐고 한심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없는 살림에 대출까지 받아서 생활비를 쥐어 주고 있다. 천천히 생각하라고 생활비가 떨어지면 또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이 생길 거라며 한 발 물러서서 토닥여 준다. 이럴 땐 또 이것저것 집요하게 찾아내 질릴 때까지 들이미는 헬리콥터 맘은 없다.
엄마의 응원 덕에 나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엄마의 세상에서 치유받고 있다.
위기에 독할 정도로 강하고, 큰 일에 침착한 나의 세상이 나를 다시 뛰게 할 걸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