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읽고
[톡커들의 선택!] 엄마가 죽었는데 무덤덤한 남친, 비정상인가요?
익명 I 조회 94,234 I 추천 1,024 I 댓글 923
안녕하세요. 결시친 내용은 아니지만 이 게시판이 화력이 좋다고 해 실례를 무릅쓰고 써봅니다.
글솜씨가 없는 편이라 빠른 이해를 위해 음슴체로 쓰겠습니다.
난 평범한 여자사람. 1년 넘게 만난 남친 있음. 난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좋아했고 사이 좋았음. 근데 최근에 남친이 죄를 좀 지어서 감옥 들어감. 증언 때문에 법원에서 남친 과거 얘기를 들을 일이 생김. (참고로 나쁜 사람은 아니고 제가 알기론 부득이하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과거 일화들을 들어보니 좀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도 들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랑 있었던 일 중 쎄한것도 기억이 남.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들만 써 보겠음.
1.
저와 결혼은 하겠지만 저를 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함.
감옥 가기 전에 있던 일임. 저랑 결혼할 마음 있냐고 물어보니까 제가 원한다면 하겠다고 함.
근데 그렇다고 저를 사랑하거나 하는 건 또 아님. (본인이 말함)
본인에겐 결혼이 그렇게 중대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
2.
본인 엄마 돌아가셨을 때 눈물 한방울 안 흘렸다고 함.
이건 저도 법정에서 들었음. 노년에 엄마 양로원 보낸것까진 들었는데 엄마 장례식 때 엄청 무덤덤했다네요.
심지어 증인 얘기중에서 자기 엄마 나이도 정확히 모른다는 얘기가 있었음; (실화입니다.)
저랑 사귄것도 엄마 장례식 끝나고 다음날임. 이건 저도 몰랐는데 정황상 확실함.
이거 외에도 몇 개 있긴 해요.. 근데 이거 빼곤 진짜 다 착하고 좋아요… 저도 감옥까지 갈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저 이 남자 계속 기다려도 될까요? 인생 선배님들의 현명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베플] 깜빵 갔다는 부분에서 그냥 스크롤 내림; 창창하실 나이에 옥바라지가 웬말이에요? 정신차리세요.
[베플] 님 다른게 아니고 저런게 소시오패스에요. 엄마 장례식날 울지도 않고 그 다음날 쓰니님이랑 사귄 것 듣고 소름 안 돋았어요? 님 죽으면 장례식 다음날 또 다른 여자 사귈 사람입니다.
[찬반대결] 저기요 그쪽 누군지 알겠는데 글 내려주시죠. 특이하긴 해도 나쁜 사람 아닙니다. 여기서 이러시는 거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도 영향 갈 수 있어요. 글 안 내리시면 정식으로 법적 조치 취하겠습니다.
[베플] 이 사건 지역에서 완전 유명한데 ㅋㅋ 찬반대결 댓글 단 사람도 재판 관련된 레X 아님? 다 티남 ㅋㅋ 저사람 동네에서 유명한 포주에요~~ 포주 친구 여자문제 때매 살인하고 감옥 간 놈 더 말해 뭐하겠음 ㅋ 저 남친이라는 사람도 사람 죽인 이유가 ‘햇빛이 순간적으로 짜증나서’라고 한 희대의 도라이임 ㅋㅋㅋ
당신이라면 이 글에 어떤 댓글을 쓰시겠나요? 만약 제가 주인공을 모른 채 이 글을 읽었다면, 손가락을 움직여 댓글 달 시간조차 아깝다 생각했을 겁니다. 뒤로 가기를 클릭하며 속으로 ‘어휴. 자기 팔자 자기가 꼬네.’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 읽은 책, 이방인의 뫼르소 얘기에요. 이렇게 보면 누가 봐도 나쁜 녀석입니다. 공감능력이 없다 못해 소시오패스 아니냐는 소리까지 등장하는 악독한 녀석.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여자를 사고 파는 포주와 친구하는 사이. 하지만 본인의 담담한 독백을 통해 우리가 지켜본 뫼르소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나요?
아마도 사형으로 생을 마감했을 뫼르소의 짧은 인생. 어머니의 장례식은 그의 짧은 인생에 엄청난 여파를 남깁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무덤덤했다’는 증언이 그의 사형 선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죠.
우리는 뫼르소가 장례식장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이야기 초반에 함께 똑똑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인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세월 동안 어머니가 뫼르소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뫼르소가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어요.
다만, 일상에서 겪는 사건 중 언뜻언뜻 어머니를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특히 살라마노 할아버지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었죠.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 왜 어머니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살라마노 할아버지는 오래 키운 개를 사랑했지만 사람들 앞에선 왜인지 항상 구박했어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애정을 드러내기 쑥쓰러운 ‘김첨지식’ 사랑법인 걸까요. 개를 잃어버렸을 때에도 처음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결국 뫼르소 앞에서 약한 마음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살라마노 할아버지의 ‘우는 소리’가 뫼르소에게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는 얘기는 굉장히 의미있게 다가오더라고요. 뫼르소가 어머니도 ‘습관적으로 운다고’, ‘그래서 양로원에 보냈다고’ 했잖아요. 어쩌면 뫼르소의 어머니는 살라마노 할아버지가 개를 대하는 사랑법처럼 아들을 대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라마노 할아버지가 개를 잃어버리고 슬퍼한대도, 평소 개에게 하던 행동들을 진정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개는 살라마노 할아버지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갑작스럽게 살라마노 할아버지가 죽었다고 해 볼게요. 개는 개니까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평소같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개껌을 씹어요. 둘의 관계를 아는 동네 사람들은 수근댑니다. ’평소에 개 산책 시키던 꼴을 보면, 개도 주인이 죽든 말든 관심 없을만 하지. 솔직히 심했었잖아?’ 어떤 비유인지 아시겠죠. 뫼르소가 본인 인생의 서사를 감정적으로 호소했다면, 적어도 사형은 면하지 않았을까요.
“학창 시절에는 내게도 야망이 있었지만
학업을 포기해야 했을 때
그 모든 것이 실제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입체적이고 모든 사람의 사정은 복잡합니다. 기생충의 송강호가 무기력한 이유는, 그 전까지 너무나 많은 계획이 실패했기 때문이었죠. 어쩌면 뫼르소가 무감각해진 이유도 너무나 많은 심리적 풍파를 겪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와의 일들도 그 풍파의 일부일 것 이고요.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평가할 때 지금 보이는 단 하나의 단면적 모습과 내가 살아온 삶의 기준을 기계적으로 대입합니다. 뫼르소의 사형도 그렇게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누군가와의 관계를 얕은 평가의 결론으로 ‘사형’ 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숙연했습니다. 제가 그 사람 인생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했던 걸까요?
다시 맨 처음 사연으로 돌아가 볼까요. 아마 사연을 쓴 마리는 이미 뫼르소를 떠난 듯 하지만, 댓글 하나를 남기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댓글] 님 남친은 님이 제일 잘 알지 않을까요? 얼굴 한번 안 본 사람들 의견 듣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참고만 하시되 너무 휩쓸리지 말고 주체적인 결정 하시길.
✍️ 그림 : 쎄이호 (@sayhoooo)
- 이 글은 [이방인-알베르 카뮈]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