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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케 Dec 03. 2020

[충격 실화] 제 흑역사를 전격 공개합니다.

[복자에게]를 읽고

나 자신을 미워했던 날들


재수도 아니고, 삼수도 아니고, 삼반수를 했었다. 설명하자면, 1년 재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간 뒤 2학기를 휴학하고 다음 년도 수능을 친 것이다. 끝까지 반대하는 아빠에게 '아빠가 뭘 몰라서 그래'라고 울며불며 소리치곤 내 결정을 강행했다. 학원도 안 다니고 혼자 공부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원하던 대학에 척 하고 붙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내 성적표의 숫자들은 전년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휴학한 학교로 돌아갔다. 1학기를 조용히 다녔다면 더 나았을까? 복학을 해도 내 실패에 대해 아무도 몰랐을, 즉 관심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1학기를 너무나 화려하게 보냈다. 함께 몰려다닐 친구 무리를 만들고, 과 선배들과 싸이월드 일촌을 맺고, 학과의 온갖 행사에서 내 존재를 나타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ENFP) 그랬던 내가 갑자기 반수를 하겠다며 사라졌다가, 또 슬금슬금 나타났으니. 내가 생각해도 내 꼴이 참 우스웠다. "다혜 복학했던데?" 이 말이 내 귀에 들리기라도 할까봐 도망다녔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몇 달간 혼자 공부하며 떨어진 사회성이었다. 공부한답시고 한참 동안 가족 제외한 사람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못 나눈 상황에서, 입시 실패로 주눅까지 드니 사람이 좀 이상해지더라. 말 더듬기. 상대방 말 듣지 않고 내 얘기만 하기. 아무도 관심 없는 주제 혼자 3절 4절까지 떠들기. 사람하고 대화할 때 눈 못 마주치고 덜덜 떨기 등등.



휴학 전 친했던 친구들과 조금씩 멀어졌다. 내가 이상해진 탓도 있었고, 그 친구들은 내 공백에 이미 다른 친구를 넣어 짝을 맞췄던 것이다. 사실 끼려면 낄 순 있었다. 하지만 눈 딱 감고 거기에 끼기엔 이미 그들끼리 만든 추억과 유대감이 너무나 단단했다. 스무살 대학생들에게 1학년 2학기의 6개월은 무척이나 촘촘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미웠다. 제일 친했던 동기 언니는 프로필 사진을 보는 것조차 힘들어 카톡에서 숨겨버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을 제일 미워했다.




솔직함과 무례함 사이


여차저차 대학생활에 날 끼워 맞추며 몇 년을 보냈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니 원래 성격이 조금씩 돌아왔다. 친구들 앞에서 말을 더듬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내 원래 성격이 이번엔 이상한 곳으로 튀었다. 친한 친구들에게 참 이기적으로 굴었다. 솔직함과 무례함을 착각했던 시절.



한 번은 이랬다. 당시의 나는 친한 친구에게 남자친구와의 소소한 일화나, 남자친구에 대한 고민을 자주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너무 자주 말했다. 친구야 미안해) 친구는 항상 자기 일처럼 내 얘길 들어줬다. 세상에 오빠 정말 다정하시다. 정말? 둘이 너무 재밌었겠다. 헉. 다혜 너 서운했겠다. 그래도 오빠 나쁜 사람은 아니잖어. 화풀어.



그러다 어느날 친구가 드물게 본인의 썸남 얘길 했다. 얘기가 아주 조금 길어지자 (참 배은망덕하게도) 지루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딱 하나, 내 얘기가 아니라서. 이 친구가 내게 싫은 소리를 할 리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우린 친하니까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것이다. "야, 이제 다른 얘기 하면 안돼?" 그러자 친구는 내게 솔직하게 말했다. 섭섭하다고. 화난다고. 내가 네 얘기를 그렇게 많이 들어준 건 기억이 안 나냐면서. 응, 너무 맞는 얘기라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렇게 친구를 잃는 건가, 싶었다.




다 그러고 살어


내가 과거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딱히 그리운 시절도 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건 다 잊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무거워서 어딘가에 놓고 왔을 뿐이었다. 어느 계절의 시간 속에, 기억 어딘가에 넣어놓고 열어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복자에게 중



다행히 착한 친구는 나를 금방 용서했지만, 나는 스스로 부끄러워 한참이나 어쩔 줄 몰랐다. 너무 창피해서 기억 저 편에 묻어두곤 잊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 친구를 마주할 때 종종 그 기억이 떠올랐다. 몇 년 후, 친구들과 옛날 얘길 하다가 그 얘길 힘들게 꺼냈다. 이러이러한 잘못을 저질렀던 난 그때 네게 참 미안했고, 스스로 부끄러웠다고. 너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착하고 똑똑한데, 나는 왜 이렇게 많은 실수를 하며 사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러자 함께 만난 다른 친구가 말했다.


"야, 지랄 마. 됐어. 다 그러고 살어."


크던 작던 인생에 그런 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것이다. 너는 본인에게 일어난 일이니까 네 머릿속에 그게 다 있어서 그렇게 느껴질 뿐이라고. 단지 자기 일이라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고, 남들이 봤을 땐, 특히 우리가 보기에도 넌 충분히 괜찮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면서.



친구가 무심하게 툭 던진 말에, 몰래 살짝 글썽거렸다가, "뭐야 너 왜 우냐? ㅋㅋ"라고 할 것 같아 얼른 눈물을 꿀꺽 삼켰다.




흑역사가 내게 남긴 것들


몇년 전 정년퇴직을 하신 아빠는 말이 굉장히 많아지셨다. 안부 겸 전화해서, '아빠 밥 먹었어?' 한 마디 하면, '응, 아빠는 먹었다. 지금 아빠 주말농장에 나와 있는데..' 부터 시작해, 정신을 차려 보면 '그래서 엄마랑 냉장고를 사기로 얘기했어'까지 단 한 번도 안 쉬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 질문의 요점에 벗어난 대답도 종종 한다. 아마도 아빠가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나는 아빠가 외롭겠거니 생각한다. 말씀이 끝나면 그냥 '응, 아빠 그랬구나. 잘 됐다' 하고 대답한다.



친구들에게는 예의를 최대한 지킨다. 가까울수록 더 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가까울수록 편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예전과 다르다. 친한 친구들에겐 항상 뭐든 주려고 한다. 그러려고 한다,라기 보다는 이제 내 마음이 그냥 그렇게 간다. 나의 수많은 흑역사와, 실패와, 실수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도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작가의 말 중



우리의 실패와 실수에는 보통 어떠한 마음이 먼저 앞서서 있다. 나의 경우에는 좋은 대학을 가고 싶었던 마음,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었던 마음, 친구의 무한한 애정을 기대하는 마음. 그 마음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우리의 흑역사들도 충분히 보듬을만한 경험들이다. 실패를 미워해 버리면, 앞섰던 우리의 선한 마음까지 희미해지지 않겠는가. 또, 다른 좋은 마음을 품어볼 힘조차 약해져 버리고 말 것이다.




복자, 아니... 다혜에게


얼마 전 학교 동기의 결혼식에 갔다. 오랜만에 동기들을 많이 만났다. 예전에 내가 카톡에서 숨겨 버렸던 언니도 만났다. 거의 10년 만이다. "언니, 잘 지냈어? 언니 진짜 그대로다!" 언니는 예전처럼 따뜻하게 날 맞아줬다. "그러게 다혜야. 잘 지냈어? 정말 오랜만이다." 연락하고 지내자고, 어쩌면 인사치레일 말들을 주고받는다. 다행히 말은 안 더듬었다.



언니를 다시 보니, 내가 너무나 미워했던 22살의 다혜가 생각났다. 문득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숨김 처리 해둔 목록에서 언니를 찾아 친구 목록에 복구시켰다. 펭수 이모티콘과 함께 차분히 글자를 타이핑 했다. '언니 나 다혜! 오늘 오랜만에 봐서 진짜 반가웠고 .....' 그 언니에게 보내는, 아니, 어쩌면 그토록 미워했던 나에게 보내는지도 모를, 요망진 문장들을.



✍️ 그림 : 쎄이호 (@sayhoooo)

 - 이 글은 [복자에게-김금희]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복자에게 -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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