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읽고
문제) 다음 문제를 읽고 옳은 것엔 O, 틀린 것엔 X라고 표기하시오.
1. 어떤 이유로든 남을 해하여서는 안된다. (O/X)
2. 신의 계시가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무조건 따라야 한다. (O/X)
3. 사람은 본인의 생존을 위해 신념을 바꿀 수도 있다. (O/X)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니 두 명의 인물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전쟁포로들이 고된 일과 혹독한 환경 때문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포로들은 운이 좋다, 천황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쳐 명예를 회복할 수 있으니까’ 라고 말하는 일본군 나카무라. 그리고 그 모든 모진 일들을 했지만 약속했던 봉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사형에 처해지는 조선인 감독관 최상민.
이야기는 이들의 인생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그저 나빴다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엔 그들의 인생도 복잡했어요. 나카무라의 몸은 ‘사기 진작’을 위해 군에서 보급한 필로폰에, 그의 정신은 일본 군인이라면 꼭 따라야 하는 ‘천황폐하의 사명’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죽기 직전까지 본인이 전쟁 중 저질렀던 일들의 옳고 그름에 대해 갈등하며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국에는 ‘자신의 일생을 착한 남자의 일생으로 생각해야겠다'며 다소 뻔뻔스런 다짐을 하곤 생을 마무리했지요.
“다른 사형수들 중에는 조선과 일본에 대해 전쟁, 역사, 종교, 정의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다. 최상민은 그런 것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이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그에게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것보다 더 나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구호와 방송, 연설, 군대 규율집 등이 가르쳐준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최상민의 삶은 조금 더 비극적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쟁에서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사형을 당합니다. 죽기 직전까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건 오직 그가 일한 댓가, 50엔 뿐이었습니다. 그는 직접 쌓아 올리지 않은 신념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가 보여준 구체적인 신념은 조선인 전체의 안위보다 내 가족이 굶어 죽지 않는 것이 우선이며, 일을 하면 댓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러한 신념조차 사형으로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의 삶의 방식은 옳을까요, 틀릴까요? 2차 세계대전에 큰 감흥이 없는 어떤 나라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며, 이들 모두 결국 피해자라고요. 반면 이 전쟁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큰 아픔을 갖고있는 우리나라 국민은 둘 다 무조건 나쁘다고 말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이들의 선택을 좀 더 첨예하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들의 입장에서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도, 환경이 특수했다는 것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들이 내놓은 몇 몇의 답안은 절대적으로 틀렸다고 봅니다. 저는 그저 '다른 생각'이 아니라 '틀린 생각'도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생각은 그저 ‘다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래서는 안되는 것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마주치는 삶의 문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확실한 오답’이라도 먼저 소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풀이의 괴로움은 개개인에게 탄생과 함께 숙명적으로 주어진 윤리적 소명이겠지요.
나카무라는 삶을 돌아보며 어쩌면 본인이 오답을 썼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잠깐 했어요. 하지만 이내, 정답을 택한 것이 맞다고 스스로를 속입니다. 최상민은 본인의 답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다가, 더 고민할 틈도 없이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답안지를 뺏겼습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이 이들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삶의 어떤 문제들에는 오답을 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답을 정답이라 착각할 수도 있고, 오답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겠죠. 다만, 내 답이 오답이라면, 오답 정리를 해야 해요. 돌아보니 내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겁니다. 내 과거의 오답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또 다시 틀리지 않도록 생각을 달리 하거나, 당시의 오답을 조금이라도 교정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실천하는 것이죠.
제가 맨 처음 던진 질문에 대해 고민해 보셨나요? 이토록 진부하게 애매한 질문이라니, 하셨을 것 압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의 삶은 지겹도록 진부하고, 골 때리게 애매한 질문 투성이잖아요. 우리, 부끄럼 없이 좋은 답을 고릅시다. 그리고 혹시나 내 답이 틀렸던 것 같다면, 꼭 오답 정리를 합시다. 먼 훗날 삶의 끝에서 나를 돌아봤을 때, 부끄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은 모두 같을 테니 말이에요.
✍️ 그림 : 쎄이호 (@sayhoooo)
- 이 글은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 리처드 플래너건]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