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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케 Sep 07. 2022

그 개의 시간

[희랍어시간]을 읽고

희랍어시간-한강


그 개는 나를 처음 보자마자 내 무릎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내가 팔을 뻗기만 하면 어떻게든 안기려 들었다. 사람에게 사랑 받음에 익숙한 개들이 보이는 애교와는 어딘가 달랐다. 무언가 불안하고 조급해 보이는 몸짓과 표정. 너무 말라서 엉덩이 뼈가 만져졌다. 나는 그 모습이 왠지 당황스러웠다.



사실 유기견을 임시보호하고 싶다는 마음은 순전히 이기적인 이유들 때문이었다.



그때쯤의 나는 마음 둘 곳을 찾고 있었다. 내 정성과 사랑을 무언가에게 아낌없이 퍼주고 싶었다.  그 무언가에 사람은 해당되지 않았다. 나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면 꼭 메아리를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피곤한 성격이란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래서 개를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집은 맞벌이 가정이라서 개를 데려온다면 하루에 절반은 혼자 둬야 한다. 평생이 그렇다면 개에게는 가혹한 일이라 생각해 입양은 감히 고려하지 않았다. (엄마아빠 집에 있는 강아지 방울이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유기견 중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귀여운 개를 정식 입양 전까지 임시보호 한다면, 개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게 아닐까? 나는 밥 주고 똥 치우고 산책 정도만 시켜주면 되니까.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의 절반을 혼자 있는 생활이라도 보호소에서 다른 개들에게 치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테니. 개를 사랑하는 나는 재밌고도 착한 일을 하는 거라고 말이다.



개는 우리집에 혼자 남게 된 첫 날 아침부터 아파트가 떠나가라 큰 소리로 하울링을 했다.



혹시나 해서 홈캠을 켜 놓고 간 게 다행이였을까, 불행이었을까. 혼자 있을 때 어떤 귀여운 행동을 할 지 궁금해서 출근길에 켜 본 홈캠에서는 계속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우리집 아파트인데. 복도식이라 소리도 다 울릴텐데. 아랫집 아줌마 소음에 엄청 예민한데. 이거 어디까지 들릴까.....



예상 못한 난관에 부딪히고 공포에 휩싸인 나는, 한시간 반 걸려 도착한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연차를 썼다. 급한 마음에 얼마가 들든 택시까지 잡아탔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무책임한 생각이 들었다.



내일도, 모레도 집이 빌 때마다 저렇게 소리를 낼텐데 그렇다면 난 저 개를 데리고 있을 수 없다.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개를 데려온 쉼터에 연락하자, 전화 말고 카톡으로, 좀 사무적인 말투로, 상황 설명을 하고 날짜는 연차가 아까우니 가능하면 오늘 당장... 운전은 엄마에게 부탁해야 하나...



집에 도착하니 개가 낑낑거리며 우는 소리로 나를 맞이했다. 개를 처음 만났을 때 봤던 그 표정이었다. 개가 불쌍하고 미워서 눈물이 났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가 스스로 벌인 일이라 누구에게 불평도 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개는 내 품으로 파고들려 분주히 애썼다.



거실 한가운데 가만히 누워 분리불안에 좋다는 훈련들을 검색했다. 그 중 이런 글이 있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분리불안이 생기는 경우도 있으니, 이런 경우에는 개와 적당히 거리를 둬야 한다고. 너무 많이 쓰다듬어 주지도 말고, 사람 옆에 항상 붙어있지도 못 하게 하랜다. 나는 사랑해주고 싶어서 개를 데려온건데, 이 개를 사랑한다면 사랑을 주지 말고 참으랜다. 내 참, 사랑과 인내는 전혀 다른 영역 아닌가요?



다음 날부턴 잠을 줄여 출근 전 아침에도 잠깐 산책을 시켰다. (아침 6시에 데리고 나가려고 하니 '이게 무슨..?' 하는 표정으로 잘 안 걷긴 하더라.) 혼자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우스' 훈련도 하고, 소음에 예민해지지 말라고 백색소음을 틀어두고 출근했다. 퇴근했을 땐 아무리 낑낑거려도 무심하게 행동했다가 개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손 냄새만 가만히 맡게 해 줬다. 이유 없이 안아주고 예뻐해 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인내했다. 개를 위해서.



개는 신기하게도 차츰차츰, 조금씩, 조용해졌다. 처음엔 하루종일 하울링을 하다가, 아침 10시부터 하다가, 오후 2시부터하다가, 어느 날 부턴가 내내 혼자서도 조용히 잘 지내게 되었다. 퇴근하면 울 듯이 낑낑거리는 것도 많이 좋아졌다. 덜 낑낑거리는 대신 조용히 꼬리를 붕붕 흔든다. 모터 단 것 마냥.



어떤 짧은 경험들은 신기하게도 인생에 길이 남을 강렬한 교훈을 준다. 내겐 이 경험이 그랬다. 나는 그 개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 개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사랑보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시간이 났을 때 개를 끌어안고 요란스럽게 사랑한다 말하고 뽀뽀하는 대신, 조용히 개의 귓속이 깨끗한지 살피고, 개가 좋아하는 곳을 가만히 긁어주고, 개의 물그릇을 한번 더 헹군다.



그 개는 다음 주에 평택으로 입양을 간다. 그 개가 혼자 있을 시간이 아예 없을, 가족 모두가 개를 사랑하는 대가족이다. 나는 그 개가 좀 더 통통해져서 다리 관절을 조금 걱정하고,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버릇 없다는 얘길 듣거나 아니면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 개가 되길 바란다.



그 전 기억은 까마득해서 나를 잊을 정도로 행복해지길. 네가 가진 마음의 상처들이 모두 씻은 듯 지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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