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구 Dec 05. 2023

내 멋대로 유럽(4)

밤베르크의 양조장


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지는 예쁜 건물들과 골목 사이를 구경하며 밤베르크를 떠나기 전 무얼 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이곳에 지역 고유 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찾아가니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양조장이 마주 보고 있다.


각 양조장 앞에 쓰인 메뉴판을 보며 갈팡질팡 하던 나는 고민 끝에 Brauerei Fässla라는 곳을 선택해 들어갔다. 



처음에 가게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누구 하나 반겨주지 않고 영어 안내도 전혀 보이질 않아 몹시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정말로 이 마을 사람들만이 오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특히 중장년 층이 마치 계모임이라도 하는 듯 모여 앉아 웃고 떠드는 공간 속에 나 홀로 불청객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용기를 내어 직원에게 말을 걸자 그녀는 나를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합석시켰다. 


쭈구리처럼 한쪽에 앉아 조심스레 메뉴판을 살핀 뒤 생맥주와 소시지를 주문했다. 



소심하게 앉아있던 것과는 별개로 맥주는 감탄이 나올 만큼 맛있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생각이 날 만큼 부드럽고 적당히 쌉싸름한 정말 맛있는 맥주였다. 


내 대각선 자리에 혼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외향적인 성격임에도 사실 낯을 가리는 나는 기를 쓰고 그의 눈빛을 모른 척하며 꿋꿋하게 맥주만 꿀꺽꿀꺽 마셨다.



곧이어 함께 주문한 소시지와 감자튀김이 나왔는데 그 양이 무척 많아 또 한 번 기가 눌렸다. 


그때 내게 계속해서 관심을 보이던 할아버지가 "Enjoy your meal."이라며 따스운 인사를 건네주셨다.


약간의 알콜 기운과 함께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린 나도 조심스럽게 "Danke(=Thank you)." 하며 인사했다.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건네기 시작했는데,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독일어를 못한다는 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분은 계속해서 내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셨다. 


나중엔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에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는 자리를 뜨기 전 내게 기념품이라며 뮌헨의 라이터를 주었고, 코스터에 Servus라는 글자를 써 건네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독일어로 헤어질 때 건네는 인사말이라고 한다. 


비록 대화는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맛있는 맥주의 술기운과 나를 향한 그의 호의 어린 호기심으로 가슴이 뜨끈해졌다. 



이후에도 나는 맥주를 두 잔 더 마셨고, 얼큰한 기분으로 양조장을 나섰다. 


즐거운 밤베르크 양조장 체험을 끝마치고 다시 뉘른베르크로 돌아오자 이미 날이 어둑해져 있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뉘른베르크의 시내를 나는 약간의 술기운과 추위를 둘러매고 부지런히 걸었다. 


다음날은 체코 프라하로 갈 예정이었기에 가서 무얼 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고민하며 즐거웠던 하루를 마감했다.


안녕, 밤베르크! 안녕, 뉘른베르크!

작가의 이전글 내 멋대로 유럽(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