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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마음에 있는 것을 있다고 짚어주는 일

by 진솔

이 팀은 약간 모범생들 느낌이라 다른 팀처럼 엉뚱한 말을 하는 아이도 없고 질문을 하면 FM식의 모범 답변이 돌아오는 편이다. 수업 진행은 수월하다. 아이들은 내가 이끌고 가는 대로 따라온다. 어쩌면 나와 아이들이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아빠를 따라 온 가족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국제학교에 다닌다.


아이들 느낌도 좀 비슷하다. 아빠들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것 같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 엄마들도 서로 친한 사이다. 내가 한 엄마에게 책을 보내면 서로 나누어 가진다.


수업을 하다보면 부모님 얘기, 형제 얘기가 나오게 된다. 엄마가 뭐해라 뭐해라 잔소리를 많이 하고 학원도 많이 보내서 엄마에게 불만이 많은 아이도 있다. 그런데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다.



≪맛있는 캠핑≫ 표지



그런 아이들에게도 뭔가 비집고 나오는 자기 얘기가 있다. 어제는 ≪맛있는 캠핑이라는 책을 같이 읽었다. 암투병을 하던 엄마가 3년 전에 돌아가시고 열한 살인 아이와 아빠가 둘이 캠핑을 하며 가까워지는 내용의 책이었다. 캠핑하는 산 근처에 사는 여자아이가 새로운 인물로 등장하는데 주인공 아이가 이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그 좋아하는 마음을 아빠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간직하고 싶어한다. 내가 말했다.


"주인공은 왜 아빠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세계'를 만들게 된 걸까요?"

-그 여자애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싫어서요.

-부끄러워서요.


"여러분들은 어때요? 저학년 때는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나 아빠한테 이런 일 있었다고 거리낌 없이 얘기하고 그랬는데, 이제 엄마 아빠한테 왠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좀 생겼나요?"


화면속 아이들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동의의 표시로 엄지척을 했다. 이 정도면 평소 보다는 훨씬 강한 반응이었다. 어쩌면 독서 수업이라는 건 아이들 마음에 있는 것을 있다고 짚어주는 일 같기도 하다. 나는 점점 그런 영역이 자라날 거라고 살짝 귀띔을 해줬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아이들도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는 영역이 생기고 그 영역이 커져나가면서 아이는 정신적 정서적으로 독립을 해나가는 것 같다. 그런 과정 속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나에게도 뭉클한 순간으로 남는다.




≪맛있는 캠핑≫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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