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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May 06. 2019

목수의 사랑

(1) 이미 너를 사랑하고 있어

"으아아악."

난폭한 4살짜리 킥보드 운전자와 부딪힌 것은 지난달 어느 날이었다. 그 녀석은 내 정강이를 향해 킥보드를 몰더니, 자신은 부딪히기 직전 옆으로 점프해 충돌을 피했다. 어린 나이지만 빠른 민첩성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내 정강이가 너무 아팠다.

"(안 괜찮은 얼굴로) 괜찮니?"

나는 인생의 선배답게 먼저 꼬마의 안부를 물었다. 꼬마는 나를 쓰윽 보더니 망설이다 갑자기 도주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뺑소니범은 자취를 감췄다. 이제 서른여섯의 남자건만 아픈 것은 정말 아팠다. 왠지 모를 서러움이 밀려왔을 때 불현듯 카톡이 왔다.

'나 결혼한다.'

내 친구 강목수의 그 카톡은 한동안 나를 멍하니 서있게 만들었다.




강목수는 나와 중고등학교 동창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동네 친구이자, 많은 것을 함께 경험했던 녀석이었다. 그는 목수라는 별명을 가졌다. 그 이유는 그의 패션 때문이었는데, 그는 한결같이 두꺼운 모직의 체크남방과 카고 바지 그리고 팀버랜드 워커를 즐겨 신었다. 집에 초대하면 베란다 확장까지 해줄 것만 같은 포스였던 그에게 친구들은 많은 조언을 주었었다.

"그래, 한 때는 그 패션도 인기가 있었던 것 같아. IMF 때인가? 하지만 지금은 아냐."

"너 혹시 린넨이라는 소재 아니? 여름엔 그게 더 시원해."

하지만 그는 줄곧 동일한 패션을 고수했다. 단지 편하다는 그의 이유에 우리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서 그도 결혼에 대해 고민하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목수 같았던 패션 덕분인지 매번 하던 소개팅은 좋은 결과를 갖지 못했다.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소개팅을 하기 위해 받았던 사진이나 카톡 프로필에서 많은 것을 연구해내려는 습성이 있었다. 상대의 성향이라던지 외모의 특징 등 저렇게 굳이 만나기 전에 탐구생활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자세히 연구/조사를 실시했다.

"그냥.. 일단 만나고 생각해. 남의 프사(프로필 사진) 연구하는 건 너 밖에 없을 거다."

가끔 금요일 저녁에 캔맥주를 하며 농구를 함께 하던 강목수에게 나는 이런 조언을 하곤 했다. 하지만 강목수는 이미 연구를 끝내고 이론을 수립한 이후였다.

"뭔가 나랑 잘 맞을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슛을 던지는 그를 쳐다 왔다. 생전 본 적이 없는 사람에 대해 하는 말이었다. 어떻게 잘 맞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강목수는 한술 더 떠서 이런 말도 자주 했었다.

"뭔가 진지한 만남도 가능할 스타일이야."

프사를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21세기 궁예는 항상 이렇게 신이 난 상태로 많은 상상을 하며 슛을 던졌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No Goal이었다.





그리고 올해 2월, 나는 그와 동네 치킨집에서 치맥을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있었던 것 같은 동키가 만든 치킨집이었다. 나는 매번 기름은 그만큼 오래되지 않았길 기도하며 닭날개를 뜯었다.

"너는 근데 이제 영영 소개팅은 안 하는 거야?"

2017년인가 나는 의미 없는 소개팅 은퇴 선언을 했다. 역시나 모두들 관심이 없었고, 평소 비난을 일삼던 친척 누나만이 현실도피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난 오히려 그 이후 자유로웠다. 더 이상 내 소개를 쏟아내지 않아도 되었고, 처음 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런저런 신경을 쓰는 것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강목수는 내 이러한 은퇴를 역시 비난하곤 했다.

"그럼 어떻게 여자를 만날래? 너 사내연애도 안 하잖아. 운명적인 만남을 기다리는 거야? 정신 차려라."

미국 카펜터처럼 옷을 입은 네가 할 소리는 아니다, 못이나 박아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를 이해시킬 수는 없었다. 프사 중앙정보국장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나는 화제를 돌렸다.

"아, 너 소개팅한다며."

"응, 이번엔 정말 마음에 들어. 모든 것이."


프사 중앙정보국장은 모든 정보와 추리 끝에 여러 영역에서 그녀에게 합격점을 주었던 것 같다. 마치 고시공부를 하는 느낌이었다.


'모든 과목에 과락(60점 미만)은 없어야 하며 평균 80점을 넘어야 한다.'


난 예전에 했던 고시공부의 합격기준을 떠올렸다. 하지만 강목수가 설교했던 것처럼 요즘은 그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씁쓸했다. 그럼 내게는 과락이 없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과락에 대해 이해가 가능하면 좋겠다는 소망을 몰래 품어보았다. 그때 강목수는 말을 이었다.

"냉정해져야 해. 결혼은 현실이고, 다 잘 맞는다고 해도 사는 게 어려운 거야."

머털도사 같은 그의 노인네 발언에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사실 은근한 비난도 하고 싶었다.

'옷이나 사. 린넨 정말 시원해 여름에. 멍청아.'




그리고 몇 개월 뒤 4살짜리와의 접촉사고 후 나는 그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되었다. 냉정한 현실이 승리한 것 같은 패배감을 살짝 들었다. 소개팅을 하기 전부터 사랑?을 시작했던 그의 이론이 맞아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패션조차 그들의 사랑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다리를 절뚝이며 집으로 돌아갔다. 갑자기 짜증이 나서 킥보드를 반으로 분해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길 한편에 잘 세워놓았다. 그리고 패잔병처럼 절뚝이며 걸어갔다. 강목수는 오늘 밤 농구나 하자며 카톡을 이어갔고, 나는 알았다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럴 땐 음악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지는 밤이었다.


(다음에 계속)



https://youtu.be/zwHF2y2ceSc

패잔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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