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불안해 하지 마 3
집에서 장기간 병간호하며 몇 가지 의료기구들을 다루다 보면 기구의 수명이 다할 때 불안해진다. 특히 어머니 호흡에 중요한 석션기가 갑자기 작동되지 않을 때 사색이 된다. 바로 환자가 저산소증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 욕창을 방지해 주는 에어매트도 1년 정도 쓰면 구멍이 생겨 공기 순환이 되지 않는다. 2007년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제정되고 장기노인요양서비스가 진행될 때라면 어머니는 1등급 환자여서 복지용구 대여가 가능했지만, 그전까지는 내가 해결해야 할 경제적인 부담이었다. 장기노인요양보험에 대해 쓸 말이 많다. 어머니는 그 제도가 실시됐을 때 투병한 지 10년차에 60세였다. 전신마비의 장애 1급이고 뇌출혈이 노인성 질병으로 인정돼 1등급을 받고도 혜택이 없었다. 보건복지부에서 선진국형 복지제도라고 홍보했지만, 의료 서비스와 함께해야 할 어머니께는 무용지물이었다.
우리 집은 의료기구를 예비로 사둘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저 고장 안 나고 오래 작동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만약 고장 날 때쯤이면 부드럽게 교체할 수 있기를, 내가 곁에 있을 때 이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중환자인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부자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수시로 찾아왔다. 하지만 가난한 중에 절실히 기도할 때 응답받은 고마운 기억이 많다. 고마운 기억들은 내게 큰 자산이 되었다.
평일 낮 시간에 어머니 간호를 맡아 주시는 아주머니와 교대하고 내가 잠시 집을 비울 때 의료기구가 고장 날 경우를 대비해 항상 폰을 휴대하고 외출했다. 장을 보거나 잠시 약속이 있어 외출할 때 내 활동 반경은 거의 집 주변이었다. 외출 시에 한 번은 꼭 집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안심이 되었다.
한 번은 석션기의 스위치와 작동 소음이 약간 이상했다. 흡입력도 떨어져서 걱정이 됐지만 담대하게(?)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내가 집에 온 후 바로 석션기가 스위치를 올려도 작동되지 않았다. 고장 난 사실 자체는 좋지 않지만, 내가 올 때까지 버텨 준 석션기가 고마웠다. 이전에 쓰다가 흡입력이 약해져서 교체된 구식 석션기 한 대가 있었다. 급하게 찾아서 응급 처치해 보았다. 그나마 월요일까지 버틸 만큼은 석션이 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만일 교회에 있을 때 사고가 났다면 택시를 잡아타고 급하게 집에 달려와야 했고, 내가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 어머니는 호흡이 몹시 불편한 사태에 직면했을지 모른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다 보니 돌발 상황에 접할 때 도달하지도 않은 나쁜 시나리오까지 떠오르는 상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언젠가부터 상황 자체만을 놓고 생각하게 되었고 오히려 그 안에서 다행이고 감사한 점을 찾았다.
가정용 병원침대와 에어매트도 몇 달 전부터 망가지고 있었다. 끊어진 침대 이음쇠를 끈으로 묶고 청테이프로 감아 각목을 대어 보강해서 썼다. 구멍 난 에어매트는 접착제로 땜빵을 해가며 사용하고 있지만 계속 바람이 새어 나와 겨울엔 견딜 수 있어도 땀이 차오르는 여름에는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할 상황이었다. 침대는 비싸서 아쉬운 대로 내 힘으로 틈틈이 계속 수리를 해나가기로 하고 에어매트는 새 것을 알아보러 의료기구점을 둘러보았다. 항균처리가 된 쓸 만한 것을 구입하려면 꽤 비용이 든다. 얼마 전부터 긴축재정에 들어가 조금씩 저축을 하고 있었다. 엄마 방에 작은 벽걸이 에어컨이라도 있어야 여름을 편히 날 수 있어 조금씩 돈을 모았는데 아직 에어매트 사기엔 충분치 않다. 청춘기에 나는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모든 초점은 엄마의 안전한 하루하루에 맞추어 있다.
마침 가정간호사님이 방문하셔서 논현동의 어느 부잣집 할머님이 퇴원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셔서 거의 새 것인 병원침대와 에어매트, 석션기, 휠체어 등 의료기구들을 한꺼번에 가져갈 사람을 찾는다고 알려 주셨다. 내겐 굿뉴스였다. 마침 그때 어머니처럼 호플리스(Hopeless)로 퇴원한 다른 가정으로부터 침대와 휠체어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엔 모든 게 척척 들어맞는다 싶었다. 우리 집의 의료기구들을 처리할 고민도 없어지는구나,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고민이 되었다. 내가 여기저기 수리한, 엄마가 지금 누워 계신 낡은 침대를 남에게 흘려보낼 수 있을까. 논현동에서 받아올 좋은 새 침대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마음 같아서는 먼저 찜했으니, 새 것을 가져와 어머니 위해 먼저 교체해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 싶다가도 이렇게 낡은 헌 침대를 받을 환자 가정을 생각하니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거저 받게 된 물건에 이렇게 내 편리만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게 욕심인가? 우리는 돈 주고 다 사서 써왔는데...?'
결국 어떤 생각에 이르러 두 가지 마음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그 환자 가정이 크리스천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여러 중보기도자들을 통해 하나님께 공급받을 수 있지만, 그 환자 가정에 믿음이 없으면 우리 집보다 훨씬 어려울지 모른다. 어머니 침대는 아직 버릴 정도로 망가지지 않았고 그동안의 수리 노하우로 내가 계속 고쳐 쓸 수 있다. 시원하게 양보하기로 결정하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병원 침대를 포기했기 때문에 용달차를 부르지 않고 교회 후배의 도움으로 손쉽게 어머니께 사용할 의료기구들을 실어왔다.
가져온 에어매트를 깨끗하게 세탁해서 어머님 침대 밑에 깔아드렸다. 새 것이라 공기 순환도 잘되고 마음도 개운해졌다. 거기다 석션기가 연달아 고장 났을 때 대체할 수 있는 비상용 기계까지 생기니 마음은 부자가 되었다. 더 이상 다른 가정에 양보한 새 침대 생각은 나지 않았다. 또 하나의 굿뉴스는 여름에 더위 때문에 고열을 견뎌야 하는 어머니 위해 사고 싶은 에어컨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한인 교회의 사모님이 내 홈페이지의 글을 보고 후원금을 보내 주셨다. 엄마 방에 설치할 6평형 벽걸이 에어컨 값에 꼭 해당하는 돈이었다. 돈이 많고 적음이 부자와 가난의 기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백(back)이 있느냐의 기준이다. 내게 백은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견뎌왔고 소망을 잃지 않는다. 나보다 돈이 많아도 그 백이 없으면 가난한 것이고 내가 얻은 기회를 기꺼이 양보할 수 있다.
2000년을 며칠 앞두고 나는 그다지 비싸지도 않은, Y2K 정전 대비용 발전기도 살 수 없는 형편에 크게 낙심했다. 당시 2000년대를 맞이하는 뉴스에서는 정전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을 높여 놓았다. 우리 집은 정전이 나면 큰일이다. 석션기, 에어매트를 작동시킬 전기가 있어야 한다. 전자상가에서 30만 원이면 살 수 있는 가정용 발전기를 살 돈이 없어 포기했다. 정전이 일어나면 119를 불러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가기로 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행히 2000년으로 넘어가는 새해에 정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저 받았지만 더 좋은 것을 남에게 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가난한 중에 다른 사람의 가난을 생각하는 것은 축복이다. 많이 받아서 나누는 것보다 적은 것 중에 내게 온 기회를 온전히 나누는 것, 그리고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자족하는 것이 진정한 부자이다. 원하는 것이 많은 부자보다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는 빈자가 더 행복한 법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청춘의 시간부터 중년의 기간까지 20년을 어머니 간호하면서 배우게 된 결핍의 행복은 내 정신에 뿌리내렸다. 그리고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나를 가르쳤다. 불안이 엄습해 와도 사시나무 떨듯 불안해하지 않는 법, 소박하고 내일에 대한 답이 보이지 않아도 빨리 자족하는 법, 내가 지금 어머니와 함께 살아 있고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 남들이 얻지 못한 드라마를 경험한 복이 있는 사람이란 것. 그렇게 어머니는 무의식 중에도 아들이 벼랑 끝에서 사는 법을 알도록 나를 이끄셨다. 그분의 삶이 내 생각을 인내로 붙잡아 주었고 그 인내에 연속적인 힘을 불어넣어 주신 분이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