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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Jul 20. 2021

새 한 마리

날지 못하는 새를 상상했어. 나처럼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낙오자를 말이야. 날지 못하는 새가 날개를 잘라버리는 일을 상상했어. 그런데 그 마저도 뜻대로 할 수 없는 거야. 마치 죽여 달라고 말하는 병상의 노인처럼. 벼랑 끝의 선택마저 비참하게 거절당하는 그런 새 한 마리를 상상했어. 그 새는 어떻게 죽어야 할까? 어떻게 날개를 잘라버릴 수 있을까? 나는 그래서 부리로 자신의 날개를 쪼아 대는 모습을 상상했어. 그런데 그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일 것 같아. 너무 오래 걸리고 말이야. 나는 그래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새를 상상했어. 일부러 날개가 땅을 향하게 뛰어내리는 거지. 다행히 작전은 성공했어. 날개만 부서진 거야. 날개가 부서진 새가 피를 흘리며 나에게 오는 모습을 상상했어. 다리에 총을 맞아 걸을 수조차 없게 된 비참한 사슴에게 말이야. 


 그 새가 나를 사랑하게 되는 걸 상상했어. 나를 사랑하게 된 새 한 마리가 나를 위해 날개를 꺾어 버리는 일을 상상했어. 우연히 숲에서 나를 발견한 새 한 마리가 나를 사랑하게 된 거야. 그 새는 아직 굳지 않은 피로 검붉게 물든 내 다리를 발견했지. 그리고 부러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는 거야. 아주 우연인 것처럼 내게 말을 걸지. 자기도 날 수 없다고 말이야. 이럴 바엔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그 새는 알았거든 나를 처음 본 순간. 내가 얼마 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 말을 또 철석같이 믿는 거야. 나는 또 그 새가 내 운명이라고 믿는 거야. 그래서 나는 순간적으로 나보다 더 그 새를 가엽게 여기며 울어버리게 되는 거지. 그 새 한 마리는 내 울음을 보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그 새가 절벽 끝에서 추락하는 걸 상상했어. 피 흘리는 커다란 날개를 질질 끌며 내게 다가와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목소리를 상상했어. 


 어쨌든 부서진 날개를 가진 새 한 마리가 나와 함께 죽어가는 걸 상상했어. 새는 마지막 순간에 노래를 해서 다른 새들을 불렀어. 숲 속의 모든 새들이 그 소리를 듣고 우리를 찾아왔지. 숲 속의 모든 새들이 우리의 장송곡을 불러주는 모습을 상상했어. 그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지구의 모든 인간이 그 순간 엄숙해지는 걸 상상했어. 사슴 한 마리와 새 한 마리가 함께 죽어가는 걸 상상했어. 왜냐하면 혼자 죽는다는 게 이렇게 두려운 일인지 몰랐거든. 새벽의 숲은 모래지옥처럼 나를 어둠으로 끌고 가. 나는 어렸을 때 노래를 배우지 않은 걸 후회했어. 엄마가 그랬거든. 아무리 사슴이라도 노래 하나쯤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이런 일이 내게 생길지 몰랐지. 노래하며 죽어가고 싶어. 아는 노래가 하나도 없으니 나는 새 한 마리를 상상했어. 날 위해 노래를 불러줄 새 한 마리 말이야.


 자주 가던 샘물에 가서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나는 내 얼굴이 좋거든. 할 수만 있다면 물속으로 가라앉고 싶어. 벌레들이 내 시체를 뜯어먹는 걸 상상하는 건 너무 끔찍하니까. 물고기들은 눈동자가 동그랗고 귀여우니까. 어쩐지 그런 애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죽어서도 말이야. 나는 지금 죽어가서 조금 우울한가 봐.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노래를 한 곡 듣고 싶어. 내가 아직 다리에 총을 맞지 않았을 때 나는 몰래 새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걔네들이 노래하는 걸 듣곤 했거든. 나는 가끔 어떤 새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어. 사실은 그 아이를 보러 간 걸 수도 있어. 사실은 내가 그 새를 사랑한 걸 수도 있어. 만약에 다리에 총을 맞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그곳에 가서 꼭 그 아이의 노래를 듣고 싶어. 만약에 그 아이와 또 눈이 마주친다면 절대로 피하지 않고 싶어. 그래서 꼭 그 아이에게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하고 싶어. 나는 지금 너무 우울한 것 같아. 왜냐하면, 그게 사랑인 줄 이제 안 것 같거든. 나는 날지 못하는 새 한 마리를 상상했는데 사실은 너가 아주 근사하게 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이제 내 세상이 끝나가서. 미안해. 너와 함께 죽는 걸 상상했어. 왜냐하면 이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거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너와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뿐이야. 미안해. 어디선가 희미하게 네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생을 원하지 않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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