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 헌
[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 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 ]... 책 제목이 길고 특이해서 골라본 주제이다.. 저자는 다독의 왕이다. 이미 이러저러하게 철학과 과학 경제서 및 기타 자기 개발서 등을 합치면 약 3000여 권이 넘는다고 하니 엤말에 책 한수레를 거진 반 정독 독파한 실력자이다..
한눈에 보는 주제는 인류 태통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휴머 노이드 로봇인 소피아까지 거스르면서 한 남자의 매일매일의 연대기를 기록하고 연결하여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내었다..
상상력 , 작가의 상상력과 해박함은 일반 수준을 뛰어넘는다 책의 주제로 들어가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중세 시대의 화장실 문화와 향수 , 고대인들이 느꼈을 법한 위함과 두려움에 대처하는 법, 그리고 근 현대사로 오면서 오늘날의 세상과 많이도 달랐을 당시의 실정관 환경을 비교적 정확하게 자료를 통하여 나타내 주었다... 보다 흥미로운 건 그 긴 시간 속에서 인간이라는 종은 살아남았고 오늘날 오히려 다른 멸종 하는 종의 가장 큰 위협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화 인류학 지구 과학에도 어느 정도 이해가 있다... 예를 들면 ,, 우리나라 조선 시대 숙종 전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대 기근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소 빙하기의 영향력이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예전에 문화 인류학자이자 생리학자인 제러드 다이아 몬드의 [ 총 , 균 , 쇠]를 내리읽어 본 적이 있다.. 문명의 이동 경로와 발달에 관항 이야기이다... 우리 지구는 경도와 위도를 가지고 있는데 절대적으로 문화는 위도를 중심으로 좌측 우측으로 흐른다.. 우 연찬 케도 발견된 바퀴는 남미 안데스 산악 지형에서 먼저 발견 혹은 발명된 관계로 수백 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쓰임새가 없었다... 유럽으로 전파되어 평탄한 평지에서 다 달아서야 비로소 쓸모가 있어진 것이 인류 문명사에 큰 획은 그은 바뀌이다... 이후 증기기관 , 비행기 , 핵무기 경쟁에서 인터넷 ,, 4창 산업 혁명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인류는 가장 빠른 시간을 통하여 세계를 통합하여 왔고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하지 않을까 한다..
작가의 상상력은 글을 읽는 내내 , 재미와 문화적 , 역사석 상식과 기록에 대한 일깨움을 확인해 주었고,,, 어찌 보면 인간종의 발달사에 대한 거대한 담론을 제공한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의 일관된 주제어를 통한 보다 세밀한 논거와 규칙 , 개인성과 앞으로의 인휴 혹은 인간종에 대한 보다 진화적인 모습을 추적하려면 또 다른 Tool 이 필요할지는 모르겠다.... 현제까지 그러했듯이 약육강식 , 적자생존의 이해는 앞으로도 나라 간 혹은 개인 간 더욱 치열 해지는 인류 공생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늘 그래 왔듯이 전쟁 없는 중간 기간을 우리는 평화라고 한다. 하지만 전 지구적 연대기를 살펴보면 우리가 얼마나 짧은 시기 동안만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지 사실로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면 하더라도 한국전쟁이 종료된지는 거의 69년 전 일이고 , 2차 세계 대전 종정은 1945년 그리고 거슬러 임진 왜란은 거의 400여 년 전의 일이니 그리 오랜 시차가 아니다...
현재의 평화와 인간 존속이 부티 , 기계화의 문명에 혹은 전인류적으로 빠르게 퍼지는 인공 지능 및 다른 생리학적 작용과 반작용으로 인간 자체가 소외되는 세상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우리 인류는 2차 세게 대전 이후 그래도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걸까요? 안 그래도 고민이 많은 인간들은 오늘 밤 또한 뒤척이며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습니다만 ,,,, 책력 거 99 쓰다.
Value Up tip ; 스위스 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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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후기 용병전력은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과 기타 분쟁들을 겪어온 베테랑들로써, 한시적 복무가 아닌 직업적 군인으로 유럽 각국에서 중요하게 평가받았고, 전투 지휘관들 역시 급하게 편성된 농노 전력보다는 장기간 전장에서 단련된 병사들과 함께 전쟁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스위스 용병(Reisläufer)은 장창(pike)과 핼버드(halberd)를 이용한 결연한 집단 공격력 덕분에 중세 후기에 그 전력 가치를 인정받았다. 스위스 지방정부에 의뢰만 하면 언제든지 준비된 스위스 용병단을 고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특히 매력적인 요소였다. 스위스엔 수많은 스위스 주(canton)들이 존재하였고, 각각의 주마다 존재하는 지방정부는 병사들을 선발해 무장시키고 언제든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민병대 운용 조직이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스위스 자체도 때로는 그들을 개개인 자격으로 혹은 작은 규모로 고용하여 운용하였다는 것이다.
스위스 각 주의 전사들은 13세기 초부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Habsburg)의 모르가르텐(Morgarten)과 라우펜(Laupen)에서 중무장 기사들과 싸워 승리해 국권을 사수한 이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이후 이탈리아 북부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그 평판과 명성은 더욱 올라갔다. 15세기에 이르러 이들은 용병으로써 가치가 높아졌고, 부르고뉴 전쟁(Burgundian Wars)에서 혁혁한 승리를 연거푸 거둠으로써 그 가치를 입증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고용상태에 따라서 때로는 독자적인 전투단으로, 때로는 스위스 주 방위군으로 각지를 누볐다. 스위스 용병을 의미하는 그들의 용어 Reisläufer는 글자 그대로 "전쟁에 나가는 사람" 이라는 뜻이며, "군사작전"(military campaign)을 의미하는 중북부 독일어에서 전해진 말이다.
스위스 용병은 상당히 긴 파이크를 들고 거대한 종대(columns)를 구성해 머리를 밀치는 공격 전술과 포로를 사로잡는걸 원치 않는 거침없는 승리의 행진은 무서운 공포와 경외를 불러일으켰으며 마키아벨리(Machiavelli)는 이들의 전투 방식을 자신의 저서 군주론(The Prince)에서 강연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프랑스의 발루아(Valois) 왕은 스위스 창병(pikemen)을 보병 전력 핵심으로 삼지 않고서는 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까지 하였다 (비록 흔히 "pikemen"으로 표현했지만 스위스 용병 유닛에는 16세기 동안 10년간 핼버드(halberdier)가 유닛으로 포함되어 있었지만, 충분히 작은 숫자의 잘 무장된 무기인 석궁과 조잡한 화기류를 사용해 공격 종대가 전진하기 전에 민첩하게 먼저 앞장섰다).
젊은이들은 전장에 싸우러 나갔고 때로는 죽기도 하였지만 외국에서의 복무는 많은 동기를 유발하였는데, 여전히 농업에 의존하는 낙후된 스위스보다는 경제적으로 나았기 때문에, 또는 모험심으로, 혹은 스위스 용병이라는 자부심으로, 그리고 군사 역사가 찰스 오만 경(Sir Charles Oman)이 지적하였듯 두 세기에 걸쳐 축적된 전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으로 이들은 끊임없이 용병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