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스쿼시] 돌아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
"처음에 회원님 봤을 때 잘 뛸 수 있을까 걱정이었어요."
내가 스쿼시를 몇 년 다니고 나자 선생님은 내 첫인상에 대해 넌지시 털어놨다. 스쿼시를 시작하기 전 준비운동으로 러닝머신을 뛰는데 힘 없이 달리는 모습에 스쿼시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는 거였다.
하지만 반전의 나는 뛰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뜀박질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고, 6학년 땐 육상부 선생님 눈에 띄어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스쿼시를 배우고 나서도 뛰는 것 하나는 잘했다. 선생님은 사기진작용 칭찬이었는지 몰라도 '회원님 체력은 진짜 좋아요', '다리가 좋잖아요'라고 여러번 칭찬했다.
근데 문제는 손이었다.
'손으로 라켓을 휘둘러 공에 잘 맞히는 게' 스쿼시인데, 좋은 다리가 아깝게 손이 제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정타로 정확히 쳐야 힘도 덜 들고 공도 훨씬 멀리 날아가는데 그게 안 됐다. 빠른 발에 대한 칭찬은 어느덧 '다리는 참 좋은데...'로 바뀌어 있었다.
이 사태는 처음부터 예견돼 있었다. 선생님은 내 다리가 아니라 손을 걱정했어야 했던 것이다. 아니다, 내 고집을 걱정했어야 했다.
복싱을 시작하면 먼저 줄넘기를 수천개 하듯, 스쿼시를 시작하면 런지를 수천개 하게 된다. 바른 그립으로 라켓을 쥐고 손목을 세운 상태에서 무릎을 굽히고 내 앞에 있는 공을 치는 자세, 이걸 매일 반복한다. 문제는 내가 그걸 그대로 따라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강습을 받으면서도 속으로는 '이렇게 해도 쳐지는데 꼭 저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잘 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오만했던 나여). 고집쟁이 초보였던 나는 그렇게 제멋대로 생각하고 제멋대로의 자세로 공을 쳐왔다. 수년간.
예전에 본 사주에서도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고집쟁이'로 나왔었다. 사주 선생님은 나의 똥고집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해도, 똥인지 된장인지 자기가 찍어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거예요."
스쿼시에서도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내가 찍어먹어봐야 했던 것이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방망이 잡듯 라켓을 쥐고 공을 친 지 5년. 나는 방망이에 두들겨 맞는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립부터 자세까지 모두 바꾸고 있다. 이런 나를 두고 스쿼시 선생님은 "이 정도면 성격을 바꾼 거예요"라고 말했다. 후회하긴 이미 늦었다. 슬프지만 내가 간 길은 된장이 아니라 똥이었다.
그나마 위안은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것. 중간에 대구, 광주 많이 들르긴 했지만 어쨌든 서울로 한 걸음씩 가고 있다.
다리에 대한 칭찬은 이제 '끈기'에 대한 칭찬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회원님처럼 꾸준히 열심히 하는 사람 없어요"라는 선생님의 위로가 한 번이라도 더 라켓을 휘두르게 만든다. 그런데 이 끈기 역시 잘하든 못하든 내 맘에 들어온 운동을 끝까지 해보려는 내 '똥고집' 때문일 것이다.
그놈의 고집 때문에 빙빙 먼 길을 돌아가지만, 또 그 고집 때문에 오늘도 서울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