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스쿼시] 운동엔 성별이 없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체 튼튼이와 상체 튼튼이. 나는 '하튼이'에 속한다. 그래서 다리나 발로 하는 종목을 잘했다. 달리기부터 축구, 발야구까지. 하체가 튼튼하다는 점은 바지를 살 때 허리가 아닌 허벅지에 맞춰야 한다는 것 빼고는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허벅지가 두꺼워야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말도 나를 흐뭇하게 했다.
다만, 하체에 비해 부실한 상체가 아쉬웠다. 사실 상체는 '하체에 비하지' 않아도 그냥 부실했다. 친구의 상체 몸두께와 내 몸두께를 비교해보자면 굴욕적이게도 내 건 마치...... 종잇장같은 느낌이었다. 힘이라고는 하나 없을 것 같은 그런 얇디 얇은 사람. 팔도 갸날프기 짝이 없었는데 막대기 같은 몸에 심지어 어깨까지 앞으로 굽어있었다. 아 슬픈 멸치여.
그래서 스쿼시와 함께 시작한 헬스에서도 상체 운동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라켓을 잡고 휘두를 힘이 충분해야 잘 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참에 굽은 어깨도 펴고 싶었다. 물론 하체도 포기할 수 없었다. 발이 공 앞까지 가야 팔을 휘두르든지 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상하체 건강한 멸치를 목표로 삼았다.
모든 헬스인이 그렇듯 나 역시 나만의 루틴이 있다. 시티드 레그 익스텐션-랫풀다운-덤벨 순으로 돌다 내키면 상체 운동을 하나 더 했다.
헬스장에서 무념무상 나만의 루틴을 따라 돌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참견 소리가 들려온다. "상체를 키우고 싶으신가 봐요"는 양반이었다. "아이구 여기 근육은 (남자인) 나보다 두껍겠네", "와 저 근육 좀 봐". 빼빼 마른 내가 기를 쓰고 헬스를 하고 있으니 나름 '친근감의 표시'라고 (착각하고) 한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남자가 운동할 땐 들을 일 없는 말들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이런 말이 신경쓰여 헬스를 못 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운동만 열심히 했고, 불쾌한 눈빛이 느껴지는 날엔 눈싸움도 불사했다. 운동이 때론 정신적 전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근력을 기르러 왔는데 정신력을 기르고 있다니. 그렇게 하루, 이틀, 한 주, 한 달, 일 년, 오 년을 운동하니 이젠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이제서야 나는 비로소 그냥 평범한 '운동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왜 여자가', '왜 남자가' 라는 말은 모두의 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쿼시를 치다보면 서로 다른 성별끼리 게임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나는 모든 운동을 '원래부터' 남자가 더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간 운동을 해온 시간과 근력의 차이에 따라 실력차가 생긴다고 믿는다. 여자보다 운동을 잘하는 남자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성별에 따른 운동 능력의 차이를 일반화할 수 없는 이유다.
"아니 남자가 그렇게 못 해서 어떻게 해."
간혹 나보다 오래 스쿼시를 했지만 나보다 실력이 낮은 남자 회원들을 만나기도 한다. 개인의 운동능력 차는 어느 종목이든 생길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남자 회원이 게임에서 지는 날엔 이런 류의 핀잔들이 날아온다. 진 사람도 이긴 사람도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저런 말을 들을수록 못 친다고 타박받은 남자 회원의 손엔 힘이 들어가고, 초보가 힘으로만 휘둘러서 치는 공은 강점보다 약점을 더 많이 노출한다. 그러다 보면 또 게임에서 진다. 악순환이다.
나는 '여자치고 잘한다'는 칭찬도 듣고 싶지 않다. 그런 말을 듣고 있자면 이게 칭찬인지 위로인지 알기가 어렵다. 진짜 칭찬을 하고 싶다면 좋은 방법은 따로 있다.
센터엔 남녀 누구에게나 공을 편안하게 잘 쳐주는 구력이 오래된 회원이 있었다. 상대가 힘으로 쳐도 우아한 백조처럼 천천히 가볍게 받아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저렇게 칠 수 있지 궁금해지곤 했다. 뭐랄까 너도나도 호랑이처럼 달려와 코뿔소처럼 들이받으며 치려는 코트 위를 관조하며 나는 독수리 같달까. 상대가 받기 어려운 공을 치거나 좋은 플레이를 보이면 칭찬도 아까지 않았다. 그때마다 "굿샷"이라는 말이 날아들었다.
어느날 게임을 마치고 코트를 나온 뒤 그 회원은 내게 다가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여기 센터 다니는 사람 중에 제일 많이 는 것 같아요."
내가 스쿼시를 치며 들은 어느 칭찬보다 기분 좋은 말이었다. 그는 성별이 아닌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나아진 모습을 칭찬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인정이었고 불편한 구석이 하나 없는 말이었다.
나 역시 누군가를 칭찬하거나 조언을 하려고 할 때 고정관념을 담고 있는 말인지, 상대가 불편할 부분은 없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곤 한다. 그게 비단 성별이 아니더라도 구력이나 체격조건 등 다른 부분에 대한 선입견을 은연 중에 드러내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헬스장과 코트가 모두에게 좋은 놀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칭찬 혹은 침묵이 필요한 이유다.
5년간 열심히 스쿼시와 헬스를 한 덕에 이젠 누가 보더라도 운동한 태가 나는 몸으로 변했다. 허벅지엔 탄탄한 근육이 잡혔고, 팔은 여전히 얇지만 삼두근이 빛나게 자리잡았다. 어느덧 나는 설거지를 하다 종종 뒤돌아봤을 때 거울에 비치는 내 등근육에 만족하는 사람이 됐다. 열심히 운동하고 단단해진 자신의 몸을 보며 흐뭇해하는 데엔 성별 구분이 없다. 운동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