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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 Sep 07. 2022

개똥같은 스윙이라도 한 번 더

[아무튼 스쿼시] 운동이 나를 배신할 때

운동이 나를 배신할 때운동이 나를 배신할 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시시포스는 어느 순간 가장 괴로웠을까. 신을 속인 죄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까지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했던 그는 언제 가장 절망했을까.


바위를 밀어 올리기 시작했을 ? 바위를 밀어올리는 순간? 그런 상상을  생각은 바위를 정상까지  밀어올린 그때가 아니었을까 였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을  ‘이번엔 다를 거야, 이번엔 다를 수도 있어라는 희망에 젖었다가 여지없이 다시 굴러 떨어지는 돌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차라리 돌을 밀어 올리는 동안에는 그나마 덜 괴로웠을 것이다.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시간에는 어떤 절망도 이겨낼 수 있으니까. 다시 돌을 밀어 올려야 한다는 사실보다 앞으로 나아질 게 없다는 사실이 더 괴롭다.



운동은 정직하지만 과정은 배신의 연속이다. 몸을 쥐어짜는 노력 끝에 바위를 다 밀어 올렸는데, 드디어 됐다 싶은 순간에 돌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굴러떨어진다. 내가 나아지고 있는 건 맞는 건가 하는 생각만 든다. 일 년 전 찍은 영상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때, 초보 때 나쁜 버릇을 아직도 달고 다니는 걸 발견할 때, 몇 번이고 바위는 다시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마음 속에서 비명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아니 어떻게 몇 년을 쳤는데 아직도 이러냐'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뒤따라 이런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때려치울까? 요새 풋살 많이 하던데 그게 더 잘 맞을 수도 있어'. 물론 10초도 안 돼 라켓을 다시 집어들고 스윙을 다시 시작한다. 시시포스만큼이나 내겐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하는 것 말고는.


잘 안 돼서 화가 나고, 포기하고 싶어지고, 진짜로 포기하는 것. 비단 운동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무언가를 해내기 직전에 그만둘 때 일어나는 일이다. 다음 계단에 내가 내일 올라설지 다음주에 올라설지 아니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으니, 화가 나면 그만 둔다. 한 발짝 앞에 놓인 계단을 뒤로한 채.


"회원님, 진짜 많이 좋아졌어요. 레벨이 올라간 느낌인데요."

"다음주에 오면 또... 못치고 있을 거예요."

"원래 되려다 말고, 가끔 되다가 어느순간 완전히 되고 그러는 거죠."


내가 스윙을 좀 더 똑바로 하고, 버릇을 고친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데 함께 치는 회원들의 순간은 종종 목격한다. 다음 계단에 발을 내딛는 사람의 모습을. 물론 월요일엔 다음 계단에 올라섰다가 금요일엔 다시 이전 계단으로 내려가 있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어떤 날엔 두 발 다 윗계단을 딛고 설 수밖에 없다.

 

유튜브에 스마트 스토어를 해서, 부동산 투자를 해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들이 나와 하나같이 하는 말은 "영상으로 이걸 다 알려드려도 1%도 안 해요"였다. 유튜브에 너무 방법을 다 알려주는 거 아니냐고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걱정말라면서 한 말이었다. 


그래, 우리는 부동산으로 돈 버는 법도 알고, 장사로 돈 버는 법도 안다. 다만 하지 않을 뿐. 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에 운동도 당연히 포함된다. 개똥같은 스윙이라도 오늘 한 번 더 휘두르면 내일은 더 나아질 수밖에 없다.


실패도 뭔가를 해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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