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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 Sep 04. 2022

듣기 싫은 말, 고맙습니다

[아무튼 스쿼시] 부정적인 피드백도 필요하다

“000씨 왜 그렇게 생각하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뭡니까?"


일순 회의장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회사 내 최고위급인 상사는 수많은 직원들이 앉아 있는 회의실 앞에서 자기 나름의 생각을 얘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식과 내용이었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직원들은 많았지만 아무도 입밖으로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상사의 의견을 거스르는 속마음을 밖으로 꺼내 얘기한다는 건 불편하고도 불안한 일이었으니까.


순간 한 선배가 손을 들고 내 맘에도 똑같이 있던 얘기들을 꺼냈다. 상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며, 직원들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그 피드백에 돌아온 답변은 싸늘한 저 한마디였다.


“ㅁㅁㅁ씨, 이런 댓글을 달았던데…”


상사는 이어 게시판에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개진한 직원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후 회의는 어떻게 됐을까? 상상 그대로 한 명만 얘기하고 많은 이가 속으로 동의하지 않는 시간이 지속됐다. 회의가 끝난 뒤 이뤄진 조사에서 상사의 말이 틀렸음이, 용기를 냈던 선배의 손이 옳았음이 밝혀졌지만 별 다른 사과도, 그렇다할 피드백도 없이 끝났다.


넷플릭스 기업에 대해 다룬 <규칙 없음>을 읽는데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책은 '솔직한 피드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다. 잘못을 지적하는 피드백이 들었을 땐 기분이 나쁠지 몰라도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하며 나중엔 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직원이 상사에게 이런 피드백을 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상사는 직원이 피드백을 건넨 용기에 감사해하며, 마음 놓고 의견을 제시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정반대였던 그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부정적 견해에 대한 거부반응은 어찌보면 본능일지도 모른다. 싫은 소리, 지적하는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듣기 싫다고 귀를 막아버리면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안다.


생각해보면 내가 스쿼시가 늘기 시작한 지점도 '싫은 소리'를 찾아다니면서부터였다. 요즘이야 내가 먼저 나서서 나보다 잘 치는 사람이나 선생님에게 "저의 가장 큰 문제는 뭐예요?"라고 묻지만, 예전에는 정반대였다. 선생님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피드백을 줘도 '아니 공 맞으면 되는 거지, 꼭 그렇게 해야돼?'라는 반발심이 먼저 일었다. 싫은 소리를 들으면 버튼 눌린 사람처럼 욱하는 마음이 먼저였다. 고쳐지지도 않고 고칠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피드백이 이어질 리 없었다.


"넌 비판을 못 견뎌해"라는 친구의 말처럼, 내 성격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놀랍게도 스쿼시는 내 성격마저 바꿨다. 잘못된 자세를 고집해 손목이 아프고, 늘지 않는 실력 앞에서 나는 내가 틀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몸에 좋은 쓴약처럼 찾아다니고 달갑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건 성격을 바꾼 거나 다름없어요"라는 선생님 말처럼 자세도 바뀌었다. 성격이 바뀌니(?) 스쿼시도 달라졌다.


초보 회원들과 랠리를 하다보면 감탄하는 순간이 있다. 예전의 나와는 달리 내 피드백을 전격적으로 수용하고 고치려고 한다. 어떤 때는 먼저 나서서 물어보기도 한다. 그게 얼마나 큰 용기인지 지금의 나는 안다. 그런 회원들은 몇 달 지나고 나면 눈에 띌 정도로 나아져 있었다. 반대로 내 피드백에 대해 그런 긍정의 신호가 없으면 나도 다음부터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내 말이 누군가에게는 잔소리이고, 스쿼시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의 나처럼 먼 길을 돌아갈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뿐이다.


문제의 그날 이후 회의는 계속 됐지만,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 부정적인 피드백은 거부하는 회의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리 만무하다.


회사나 운동이나 쓴소리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그때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갈지 여기에 그대로 머물지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설사 그때의 우리는 모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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