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스쿼시] 젊은이 힘 좀 빼게
운동하면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은, 바로 ‘힘빼기’ 아닐까 싶다.
수영의 수자도 모르던 시절, 멋도 폼도 필요없고 ‘나는 얼굴 내밀고 물에 떠서 가기만 하면 된다’는 일념 하나로 열심히 ‘개헤엄’을 연습했다. 개헤엄에 대한 놀림과 무시의 역사는 우리 생각보다도 훨씬 긴데 오죽하면 우리 속담 중에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을 안 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아무리 궁해도 체면 빠지는 일은 안 한다는데, 개헤엄이 뭐가 어때서. 얼굴을 내밀고 있어 숨쉬기도 용이하고 시야 확보에도 좋지만, 내 친구들도 양반마냥 나를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개헤엄도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수년 전 여름, 홍콩에 놀러갔다가 바닷가에서 내친 김에 바다수영에 도전했다. 물론 얕은 물에서 개헤엄으로. 당시는 정말 초보 중에 초보였는데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 짠내나는 바다에 몸을 맡겼다. 수영 좀 하는 친구가 자기가 봐줄테니 한번 해보라고 했고 나는 연신 버둥거리며 팔다리를 놀려댔지만 앞으로 가기는 커녕 물에 뜨지도 못한 채 가라앉았다. 바닷물만 원없이 들이켜는 나를 짠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 아저씨가 유유히 개헤엄을 치며 지나갔다. 그때의 나는 ‘힘빼기’라는 건 전혀 알지 못한 채 정말 ‘죽기 살기로’ 있는 힘을 다해 발장구와 팔장구를 쳤다. 그리고 그 덕분에 더욱 빠르게 가라앉았다.
힘빼기의 중요성을 알려준 건 한 백발의 할머니였다. 또다른 여름 놀러간 하노이 호텔 수영장에서 한 할머니가 힘이라곤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우아한 몸짓으로 수영장을 가로지르고 있는 게 아닌가. 백발에 못해도 70대는 돼 보이는 할머니였다. 호텔 테라스에 서서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내게 경이로움과 충격이 바닷물처럼 밀려왔다. 그러니까 힘을 있는 힘껏 주고 수영해서는 절대로 물에 뜰 수 없었던 것이다. 힘빼기의 비밀을 알게 된 나는 이후 폭풍같은 성장(?)을 거듭해 이젠 개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죽기 살기로 하는 것의 역효과를 깨닫는 건 너무 어렵다. 남들이 백번 말해줘도 ‘아니 열심히 해야 잘 할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잡혀 절대 힘을 빼지 못한다. 내가 바닷물을 사발로 들이켜고, 수영장 물도 원없이 마시면서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기분 속에 백발의 할머니를 마주치기 전까지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바보야 운동은 힘빼기야” 백발의 할머니가 등짝 한 번은 후려쳐줘야 힘주기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놓기 시작한다.
“이 회원이 치는 거 보세요. 되게 하기 싫어하고 억지로 하는데 공은 정확히 맞아서 힘있게 나가요. 이렇게 쳐야 해요. 00 회원님은 너무 열심히 힘줘서 치려고 하지 말고 라켓이 앞을 지나가듯이...”
그러게 가냘픈 회원의 라켓에 맞은 공은 의아할 정도로 경쾌한 소리를 내며 앞쪽으로 날아갔다. 어떻게 저렇게 하는 거지 궁금할 정도로 갸날픈 스윙에 맞지 않게 공에는 힘이 실렸다. 정말 라켓이 지나가는 김에 공을 치는 것 같은데 저런 공이 나오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여러 스쿼시 영상들을 보다보면 비슷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아니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쉽게 치지. 아니 저 아이는(심지어 아이다!) 어떻게 저렇게 힘있게 공이 돌아오지. ‘현타’가 오는 순간들이다. 죽어라 헤엄치고 있는 내 곁으로 유유히 힘을 뺀 백발의 할머니가 지나가는 느낌. 젊은이 힘 좀 빼게.
온몸과 팔에 힘을 줘서 고장난 목각 인형처럼 스윙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디 가서 힘빼기 수업이라도 들어야 할 판이다. 힘을 빼야 물에 뜨고, 힘을 빼야 공이 더 멀리 나아가는 운동의 역설 속에서 오늘도 '열정러'들은 코트를 뛰어다닌다. 25g의 작은 공이 아니라, 당장 곰 한 마리라도 때려 잡을 것 같은 스윙으로 무장한 채.
아 이 망할 놈의 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