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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 Jul 07. 2022

스쿼시 잘 치는 법

[아무튼 스쿼시] 계속의 힘

더운 어느 주말, 가까운 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네 냉면집에 들렀다.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가게라 미리 전화를 하고 시간에 맞춰 방문했다. “전화로 포장주문 했는데요.” 카운터에서 내가 건넨 카드를 받던 직원은 나를 보고 나즈막이 말했다.


“어, 스쿼시…… 스쿼시 맞으시죠?”


역시 세상은 좁고,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마스크를 쓰고 운동한 지 3년째. 원래도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나는 의외의 장소에서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스쿼시 센터 회원을 만났다. 심지어 나랑 몇 번 같이 치기도 했다는 눈썰미 좋은 그분은 냉면과 전을 기다리는 동안 덕담도 잊지 않았다. “거기 센터에서 제일 잘 치시더라고요.” 나는 겸손과 ‘팩트’를 반반 섞어 화답했다. “하핫, 제가 제일 오래 다녀서요.”


센터에 게임반이 있던 시절 나는 병아리였다. 그런데 게임반이 사라지고 구력 긴 회원들이 그만두면서 나는 어느새 ‘센터에서 가장 잘 치는 회원’이 됐다. 진짜 실력자들이 보면 웃을 것 같아 한 번씩 나오는 저 수식어가 언제나 민망하다. 정확히는 ‘센터를 가장 오래 다닌 회원’인데 말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고, 나는 그냥 살아남아서 강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여름은 스쿼시에게 잔인한 계절이다. 활동량이 많은 운동답게 안 그래도 숨이 턱까지 차는데, 땀에 젖은 마스크는 숨쉬기를 더 어렵게 만든다. 이러다 쓰러지겠구나 싶은 순간이 두어번 지나가면 강습이 끝난다. 각자 선풍기 앞으로 달려가는 나와 회원들의 얼굴은 더위 먹은 사람처럼 벌겋다.


강습 뒤 이어지는 30분의 연습시간. 더운 여름엔 주로 코트 문을 열어두고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어둔 채 백핸드 랠리를 한다. 내 순서가 끝나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코트 밖 선풍기 앞에 서서 다른 회원이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고쳐야 할 습관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쁜 습관은 제3자 눈에만 보이기 마련. 나도 선생님이 백날 지적하는 걸 치고 있을 땐 몰랐다가 내 스윙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내가 진짜 이렇게 치고 있었구나.


근데 알아도 고치기란 쉽지 않다. 하루는 됐다가 하루는 또 안 됐다가, 이번엔 알 것 같았는데 다음엔 다시 도루묵이 된다. ‘습관’은 어찌보면 행동보다 그 행동이 굳어진 ‘시간’을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켜켜이 쌓인 시간은 중력만큼이나 자연스럽고 거스르기 어렵다.


방법은 ‘불편해지는 것’ 뿐이다. 스윙할 때 손목을 꺾는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회원에게 하루는 말했다.


“편하면 안돼요. 지금 잘못된 자세를 바꾸려는 거잖아요. 편하면 하던 대로 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불편해야 해요, 어색하고 불편한 게 맞아요.”


불편하고 어색해야 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쌓인 시간은 우리를 누르고 눌러 가던 대로, 하던 대로 하게 만든다. ‘이렇게 쳐도 공에 맞는데 뭐, 내가 편한 대로 잘 치면 되지’가 또 쌓이고 쌓여 다음엔 호미가 아니라 가래가 필요한 상황이 된다. 그때가 되면 더 큰 불편감을 느끼며, 더 큰 저항과 싸워 습관을 고쳐야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포기해버리거나.


요즘은 일상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번아웃 한가운데 서서 열심히 살아온 시간들이 부질없이 느껴질 때면 ‘나처럼 생각하지 말자, 행동하지 말자’ 되뇌인다. 내가 편한 대로 살아온 이 방식이 지금은 맘에 안 들어 바꾸고 싶은 순간이 됐으므로.


그렇게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스쿼시도 삶도 많이 바뀌어 있지 않을까. 한동안은 적당히 포기한 채 편한 마음으로, 또 어떨 땐 물집 잡혀가며 열심히 치며 스쿼시 습관을 고쳐온 나처럼 말이다. ‘하다보면 되겠지’라는 마음을 이제는 일상에 쏟는 중이다. ‘계속의 힘’을 나는 믿는다.


한 번의 성공은 운일지 몰라도 계속되면 실력이다.
한 번의 관심은 호감일지 몰라도 계속되면 진심이다.
한 번의 도전은 치기일지 몰라도 계속되면 용기다.
한 번의 발걸음은 지워질 발자국을 남기지만 계속되면 길이 되고
한 번의 비는 지나가는 소나기지만 계속되면 계절이 된다.
한 번은 쉽고 계속은 어렵지만 삶을,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계속되는 그 무엇.
그러니 멈추지 말고 나아가길.
가장 큰 힘은 계속 되는 것 안에 있다.

- <찰스 J. 사이코스 성공의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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