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스쿼시] 미안해하지 말아요
그런 날이 있다. 던지는 족족 공이 안 들어가는 날.
중학교 2학년 체육시간, 체육대회를 앞두고 반 대항 농구경기가 벌어졌다. 어린시절 운동을 좋아했고 잘했던 나는 우리 반 대표로 참가했다. 축구를 할 때도 농구를 할 때도 공격수 포지션에 있던 내게 공이 심심치 않게 패스됐다. 그런데 그날따라 내가 던지는 족족 공은 림을 맞고 튕겨나왔다. 나중엔 스스로가 민망해질 지경이 돼서 '차라리 공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어서 끝났으면' 싶은 게임이 정말 끝나갈 때쯤, 나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의 활약으로 우리는 상대 반과 동점을 이뤘다. 경기가 불과 몇 초 남은 순간. 득점률이 폭망 수준이었던 내게 다시 공이 전달됐고, 코트 우측으로 드리블해서 간 나는 골대 가까이에라도 붙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을 높이 던져 올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 공은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림 안으로 빨려들어갔고 그 순간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버저 비터이자 역전골. 내 인생의 첫 버저 비터는 그렇게 속으로 울며 달리던 열 다섯 살에 찾아왔다.
팀 스포츠는 끈끈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팀원이 있어 때론 든든하고, 때론 정말 뛸 맛이 난다. 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는 날이 찾아오면 이건 혼자하는 스포츠보다 더 곤혹스럽다. 내가 못 해서 나 혼자 망하면(?) 상관 없는데, 나 때문에 우리 팀이 망한다는 생각은 부담감이 백 배로 커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부담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자책골을 넣은 선수가 곧이어 만회골을 넣는다든지.
개인스포츠인 스쿼시에선 복식을 치지 않는 한 남에게 미안할 일은 잘 생기지 않는데, 연습 랠리를 할 땐 사정이 다르다. 서로 공을 주고 받으며 기본기를 다지는 랠리의 특성상 같은 팀은 아니지만 팀처럼 밸런스를 맞춰서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비슷한 실력의 사람끼리 칠수록 이것저것 다양한 연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스포츠에서 나와 똑같은 실력의 상대를 만나기는 어렵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못 해서 운동이 안 되시죠."
"(더 쉽게 랠리하면) 안돼요. 저 때문에 그러시면 안돼요."
지금 다니는 센터의 '화석같은' 존재인 나는 강습 후 랠리하는 시간이 되면 이런 말들을 자주 듣는다. 센터에 작년에 와도 있었고, 재작년에 왔을 때도 있었던 사람(나)이 지금도 있으니, 매해 드문드문 찾아오는 회원들에게 나는 암모나이트같은 존재일 거다.
누가 오든 상대 회원에게 맞춰서 쳐주다보면 내가 부족한 뒷볼이나 옆벽을 맞고 나오는 서브같은 건 연습하기가 어렵다. 상대가 공을 그쪽으로 쳐줄 수 있어야 내가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브 넣기도 어려워하는 회원들은 3~4번의 서브 실패가 있고 나면 급격히 위축돼 어쩔 줄 몰라한다. 서브 실패 한 번에 "죄송합니다" 한 번이 같이 따라온다.
나는 그 곤혹스러움을 안다. 서브 넣은 공이 천장을 때리거나 바닥으로 패대기쳐질 때 몰려오는 민망함. 근데 그 기분에 사로잡혔다가는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마'의 스쿼시 버전이랄까.
"부담 갖지 말고 치세요. 편하게~ 시험 보는 거 아니니까."
"다음에 볼 사람 아니니까 편하게 쳐도 돼요. 자신있게!"
괜한 우스갯소리를 던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안해서는 공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민망함과 미안함과 쪽팔림과 '차라리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지나가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그리고 누구와 치든 자신의 운동을 하는 건 그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너무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미안해서,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운동을 그만둘 필요도 없다. 우리는 무엇을 시작하든 미안함과 민망함을 딛고 성장할 테니까.
그리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으로 속으로 울며 뛰다보면 운 좋게 기회도 찾아온다. 영화처럼 버저 비터를 넣는 그 순간 말이다. 그것만큼 달콤한 환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