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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Feb 25. 2022

내일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맑은 오늘 쓰는 우산

[Cloud Mania]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내일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맑은 오늘부터 우산을 쓰지는 말자

https://youtu.be/C5NF2JXHCMk

제목: 걱정하지마. 그냥 구름일 뿐이야, 촬영 장소: 포르투갈 알가브, 촬영 장비: 삼성 갤럭시 S9


한 밤 중에 들리는 여인의 흐느낌


몹시 피곤한 하루였다. 늦게 집에 도착하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족들에게 간단히 인사만 하고 바로 침대로 가서 골아 떨어졌다.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잠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어디서 여인이 슬피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꿈속 장면과 연결이 되지 않았다. 원래 꿈은 그런 거니까. 소리의 근원을 찾아서 꿈속에서 더 깊은 꿈으로 들어갔다. 흐느끼는 소리는 점점 커져 갔다. 아니 어디지? 손을 허공에 가로저으며 소리를 찾았다. 꿈속에서는 소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럼 이 한 밤 중에 어느 집 여자가 울고 있지? 아내는 옆에서 잘 자고 있는 것 같고, 아들 딸은 분명히 자기 방에서 자고 있을 것이니 우리 집은 아니고. 잘 못 들었나? 비몽사몽 간에 또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결에도 짜증이 밀려왔다. 다시 훌쩍인다. 복도를 타고 현관문의 틈을 지나서 전달되는 얇은 소리도 아니고, 닫힌 창문을 통해서 울리는 진폭이 큰 두꺼운 소리도 아닌 전혀 간섭 없는 작고 명료한 소리였다. '혹시 우리 집?'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가장으로서 책임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침대 옆에 서서 훌쩍이고 있는 딸


우리 집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이 우리 부부의 침대 옆에 서서 훌쩍이고 있었다.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키며 "딸아 왜?"라고 외쳤다. 놀란 아내도 "왜? 왜?" 하면서 일어났다. 갑자기 뜬 눈으로 초점이 맞지 않아서 억지로 실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딸아 왜 그러니?"라고 걱정스럽게 다시 외쳤더니 훌쩍이는 딸은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내밀었다. 억지로 눈을 떠서 살펴보니 '알림장'이 아닌가. "알림장이 왜?"라고 물었더니 아직도 훌쩍이는 딸은 알림장 상단에 있는 '부모 확인란'을 손으로 가리켰다. "왜? 싸인이 안되어서 그래?" 훌쩍이다 크게 한 숨을 쉬며 호흡을 조절하던 딸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어이가 없었다. "아, 그래.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꼭 싸인해 놓을 테니 여기 침대에 두고 걱정하지 말고 가서 자라. 알았지?" 더 이상 훌쩍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며 딸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참 내~" 황당한 상황에 우리 부부는 어이없어하면서 다시 잠으로 최대한 빨리 복귀했다.


딸은 늘 아빠에게 알림장 보호자 확인란에 서명을 받았다. 숙제를 끝내고 알림장 서명을 받으려니 아빠가 아직 오시지 않았다. 아빠가 오시면 서명을 받기로 계획했다. 내일 학교 준비물을 확인하고 가방을 챙겼다. 아빠가 오실 때까지 오빠랑 신나게 놀았다. 아빠가 늦게 오셨다. 아빠가 평소와 달리 집에 오자마자 침대로 직행했다. 시간이 늦었다고 엄마가 들어가서 자라고 하셨다. 양치질을 하고 인사를 하고 자러 갔다. 한참을 자다 보니 알림장에 아빠 서명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큰일 났다. 졸린 눈을 비비고 억지로 일어나서 가방에 넣어 둔 알림장을 찾아서 엄마 아빠 방으로 갔다. 엄마 아빠는 너무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알림장에 서명은 받아야 하는데 엄마 아빠는 잠들어 있어서 서명을 받을 수가 없다. 아, 어쩌지? 알림장에 서명을 꼭 받아야 하는데. 서명을 안 받아가면 선생님께 혼나는데. 아, 어쩌지! 걱정이 되어서 눈물이 났다. 알림장을 손에 쥐고는 엄마 아빠 침대 옆에 서서 울기 시작했다. 이것이 한 밤 중에 들린 여인의 울음소리의 전모다.


그게 다 누구를 닮았겠나?


한 번씩 그때를 떠올리며 그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미 이십 대 후반이 된 딸을 놀리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절차와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생기면서 다시는 그런 경우가 없었지만, 본성이 이끄는 대로 반응한 어린 시절이 딸의 성격 특성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부부 사이에서 자식의 장점보다는 부족한 점을 지적할 때 상대를 저격하는 일반적인 멘트가 "그게 다 누구를 닮았겠나?"이다. 그래, 딸의 걱정 많음은 나를 닮았다. 계획되지 않은 일을 싫어하는 아들도 나를 닮았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고 애쓰는 나의 성격은 딸이 또 닮았고, 이성적이고 좋고 나쁨이 명확한 아내의 성격은 아들이 닮았다. 그래서, 아들은 부모의 성격이 섞여서 누구에게나 계획되지 않은 일은 명확하게 'No'라고 말한다. 그에 비해, 나는 계획되지 않은 일을 싫어하고, 특히,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을 무척 싫어하지만, 'No'라고 말하기가 정말 어렵다. 대신에,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속으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하고 계획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래서, 계획표라는 것을 세우고, 수첩에 적고, 메모한다. 요즘에는 구글 칼렌더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해서 컴퓨터와 타블렛과 스마트폰이 모두 연동되어 일정과 자료가 기록되는 동시에 모든 기기에서 업데이트되도록 해 놓아야 마음이 놓인다. 계획을 세운다고 시간을 보내고, 계획의 결과를 예측하고 준비를 해야 마음이 놓이다 보니 항상 생각이 많다. 결단과 실천이 빠른 아내에게는 '무슨 생각이 그리 많으며, 무슨 계획을 그리 세우는지... 생각하고 계획 세우다가 시간 다 보낸다'라고 한심해하는 눈치가 보일 때도 많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한 것을 어쩌겠는가?


맑은 오늘 쓰는 우산


솔직히 생각과 계획을 여러 가지로 예측하다 보면 슬슬 걱정이 된다. 다양한 변수를 대입해서 쓸만한 경우의 수를 예측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지만, 대부분 걱정이 또 다른 걱정을 낳고, 분열을 거듭한 걱정은 불안으로 번진다. 이쯤되면 자다가도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서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알림장을 들고 새벽에 서 있던 우리 딸처럼 앞으로 일어날 걱정거리를 들고 서서 어쩔 줄 몰라한다.

 

유전자 변형 GM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나의 성격을 억지로 감추고 억누르고 살기는 힘들 것이다. 걱정의 연속이었던 긴 세월을 살아보니, 언제나 크고 작은 걱정이 없었던 때가 없었다. 인생이 끝장날 것 같았던 걱정들도,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나도 인생이 끝장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거나 걱정한 것보다 별 것이 아니라고 확인이 될 때까지 나는 마치 인생이 끝장난 것처럼 걱정을 하고 고통 속에 살았다는 점이다. 지나고 보면 대체 왜 그런 걱정을 미리하면서 힘들어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도 쓸데없는 걱정으로 힘들게 보냈던 자신을 떠 올리며 "바보"를 혼잣말로 수시로 내뱉는다. 그때마다 아내가 "또 뭐가 바본데?"라고 반응한다. 나는 절대로 말을 안 한다. 정말로 바보 같은 일이었으니까.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마치 일어난 것처럼 걱정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정말 멍청한 짓이었으니까.


제 버릇 남 못주듯이 요즘도 일이 생기면 걱정부터 하지만 '오늘 미리 우산을 쓰지 말자'며 자신을 다독이고 있다. '내일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 예보를 듣고 걱정이 되어서, 날씨가 화창하고 맑은 오늘부터 미리 우산을 쓰고 다니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자'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내일 비가 오면 그때 우산을 쓰자.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우산도 없이 비를 맞아서는 안 되겠지만, 비가 오지 않는 햇살이 좋은 오늘 우산을 쓰지는 말자. 오늘 미리 우산을 쓰면, 햇살 좋은 아름다운 하늘도 못 보고, 눈부신 햇살을 즐길 수도 없고, 얼굴에 부딪히는 따사로운 행복에 대해 감사하기도 어렵다.


걱정이 많은 나의 동지들이여,

"내일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날씨가 좋은 오늘부터 우산을 쓰지는 말자".




https://www.youtube.com/channel/UCETF0QpWUjGuNrTQWtosx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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