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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Mar 08. 2022

어느 요리사의 죽음:
확신과 불신이 그를 죽였다

[클라우드 마니아]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확신과 불신이 그를 죽였다

https://youtu.be/crW4l4loJno

구름 영상 제목: '확신과 불신 사이', 촬영 장소: 포르투갈 알가브, 촬영 장비: 삼성 갤럭시 S9


면회


면회를 다녀왔다. 병원이었다. 개방된 입원 병실이 아니라, 격리된 중환자실이어서 면회 가능 시간과 인원수 제한도 있어서 다른 약속을 급히 취소하고 달려갔다. 응급으로 입원한 선배의 병문안이었다.


어, 손이 이상한데


선배는 퇴근 후에 오랜 친구를 만나기로 하였다. 시내에서 유명한 복집이었다. 가격은 다소 높았지만, 교통도 편하고, 운이 좋으면, 귀한 자연산 복어회를 맛볼 수 있는 복요리 전문점이었다. 가까운 지인들과 오붓하게 한 잔 술과 저녁 식사로 회포를 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모처럼의 만남으로 이야기 꽃을 피우며 소주 한 병이 비워져 갈 무렵 손이 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음식을 나르던 종업원에게 손에 느낌이 이상하다고 알렸다. 종업원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장이 왔고, 사장은 일단 주방장에게 확인해 보겠다고 하며 다시 나갔다.


확신


곧 사장은 주방장과 함께 돌아왔다. 50대의 주방장은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을 가진 분으로 복요리만 20년 이상을 한 베테랑이었다.


선배가 주방장에게 물었다.


"지금 손이 지린듯한 느낌이 드는데 혹시 복어 독 때문은 아닌가 싶어서요?"


20년 경력의 주방장이 설명했다.


"지금은 복어에 독이 없는 시기고, 자신이 늘 하던 대로 안전하게 준비를 한 것이니 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20년을 해 온 것인데 그런 실수를 하겠습니까."

 

선배와 친구와 사장과 주방장이 함께 웃었다.


"내가 주방장님이 복요리를 잘 하시는 것을 아는데, 괜한 걱정을 했네요. 확실하게 설명도 해 주시니까 마음이 놓입니다. 저가 착각을 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하하하."


사장과 주방장은 돌아갔다.


불신


주방장의 확신에 찬 설명을 듣고 나니, 선배와 선배의 친구는 손끝의 감각은 술을 한 잔해서 그런가 싶어서 다시 저녁 식사 자리를 이어갔다. 다시 소주 한 병이 더 비워질 무렵에는 젓가락질을 하는데 평소보다 이상했다. 술에 취할 정도도 아니었고, 술이 취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도, 복어는 손질이 정확하게 된 것이라는 주방장의 확인도 받았기 때문에 '이상하네'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손이 지린 느낌과 움직임이 둔해진 것이 확연했고 이상이 있다고 확신을 했다.


다시 종업원을 불렀고, 종업원은 다시 사장을 불렀고, 사장은 다시 주방장을 불렀다. 이전보다 경직된 표정으로 주방장이 달려왔고, 손님들이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했는지 불쾌한 표시를 내기 시작했다.


"아까 손님께 준비해 드린 복어에는 이상이 없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주방장의 감정 섞인 대응에 같이 불쾌해진 선배도 맞받아쳤다.


"아니, 이상하니까 이상하다고 하는 것이지 내가 없는 말을 한다는 겁니까?"


선배의 친구도 옆에서 거들었다.


"우리 둘 다 아무렇지도 않다가 이 집에 와서 이 복어회를 먹고 나서 느낌이 이상해서 말씀드리는 것 아니에요.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까?"


절대로 그럴리가 없다는 주방장과 이상하니까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냐는 선배 측과 날선 공방이 이어졌다. 씩씩거리던 주방장이 말했다.


"그럼 내가 확인해 보여 드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주방장은 선배가 느낌이 이상할 때부터 먹지 않고 밀쳐 놓은 시쓰루 옷감처럼 얇게 저민 자연산 복어회 접시를 끌어다가 전부 입에 탁 털어 넣었다.


신문의 단신


이튿날 지역 소식을 다루는 신문의 단신란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올라왔다.


복어독 중독으로 인해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태에 빠졌습니다. 시내 모 복어 전문점에서 복요리를 먹던 손님과 주방장이 중독되어 주방장은 사망하고 손님 2명은 시내 모병원에 입원하여 회복 중입니다. 복어에는 치명적인 맹독인 테트로도톡신이 포함되어 있고, 그 독성은 청산가리보다 무려 5배나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주방장이라면


선배는 다행히 회복되었고, 주방장님의 이야기는 항상 나의 삶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만약 내가 그 때의 주방장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불신과 확신의 순서만 바꾸어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주방장의 상황이 아니어도, 나는 현실에서 확신과 불신을 나의 입맛대로 뒤섞으며 자신을 죽이거나 타인을 죽이고 있지는 않을까? 나의 어리석음을 아시고, 지금까지, 결과가 죽음인 극단적 상황에서 나의 선택을 요구하지 않으신 신에게 감사할 뿐이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ETF0QpWUjGuNrTQWtosx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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