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록 10일차 2019.6.19
나는 두시반 비행기를, 지영은 다섯시반 비행기를 타야했다. 짐쌀 일이 조금 걱정이 되었는지,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내려가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올라와 짐을 쌌는데, 홀쭉했던 내 여행가방이 최대한으로 늘어나 뚱보가 되었다.
지영이는 이곳에 오면 뭘 많이 살 것이라고 예상하여 큰 여행가방을 두개를 살뜰히 챙겨왔다. 튼튼한 하드케이스에 그녀가 사온 신발 두켤레, 옷, 모자, 와인따위가 차곡차곡 들어갔다. 어차피 물건을 살 것을 예상했다면 나도 그녀처럼 준비를 하는게 맞지 않나 싶다. 그녀가 챙긴 가방 하나는 물론 기내용이다.
급히 잡았던 여행일정인지라, 여행가방까지 챙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상상하는 일은 언제라도 필요한 법인가보다.
공항버스는 호텔에서 도보 5분 이내에 있다. 몰랐던 사실인데, 지영이는 불필요한 물건을 제때제때 버리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필요없는 영수증이라고 생각하는 물건은 죄다 버렸는데, 거기에 처음 올 때 샀던 공항버스표도 버렸고, 내가 다시 찾은 와인2병짜리 영수증도 이미 버렸다. 좋은 것엔 꼭 안좋은 뜻밖의 결과도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다.
또 한번 우리의 습관과 행운과 불운 따위를 뒤로 하고, 마르코폴로 공항으로 향했다. 내 항공바우처에 베네치아 베네딕트라고 기재가 되어 있어 이 것이 의미하는 바가 마르코폴로인지를 표 파는 사람한테 물었는데, 그런 지역은 없다고해서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직접 보여주니, 베네딕트가 아니라 브에네딕트라며, 거기가 마르코폴로 공항이라고 대답한다. 아휴... v 발음..(웃음의 포인트!)
체크인을 하는데, 두 비행기 다 모두 중간좌석이라고 하니, 걱정이다.
푸랑크푸르트로 와서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아, 2시간을 연착. 비행기를 타고나니 기계결함이 의심되어 점검차 연착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비행에 공포를 느낀 적은 없었는데, 얼마전의 항공기 결함으로 박살이 나 수많은 사람이 죽은 일이 생각났다. 트라우마에 관한 것인데, 베니스에서 수없이 배를 타고 다니면서 이동을 하면서 요동치는 물결을 보면서 내내 ‘이러다 가라앉으면 죽는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세월호도 그렇고, 헝가리의 유람선 전복사건에서 전멸당한 평범했던 사람들. 지영이도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누구나 그럴꺼라고 했다.
누구나 그럴꺼라고 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세월호가 또 떠올랐다.
이제 여행을 마치고 인천에 착륙한다.
즐거웠던 여행.
게다가 지영이랑 다니면 싸우지도 않는다는 사실도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사족
꿈은 중요하다. 해외여행 자율화가 시작된 이십대 초반, 유럽여행이란 부잣집 딸래미나 갈수있는 사치품목이었다. '언젠가 우리가 같이 유럽여행을 갈수있게 되기를' 스치듯 수다떨었던 기억이 무색하게도, 그 후로 십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나는 유럽여행을 세 번 넘게 다녀왔다. 이후, 각자의 삶이 번잡하여 제대로 만나지도 못한 세월이 눈깜짝할새 지나갔다. 그리고 나서야 같이 유럽으로 여행을 했다. 이번이 두번째다. 그래서 꿈은 중요하다. 오래전, 디자인을 전공했던 지인이 뜬금없이 "내 꿈은 빵찝주인이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는데, 이십년이 지나 지금 제빵사가 되어간다. 우리에게는 아주 구체적이고, 단단하며 행복한 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