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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Feb 07. 2019

데리버거가 너무 싫은 이유

단짠의 데리야끼 소스가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매일 밤 거실엔 노랗고 따듯한 불빛이 가득했다. 엄마는 우릴 일찍 재운 뒤 거실에서 스탠드를 켜고 공인중개사 공부를 했다. 낮에는 어느 전업주부처럼 시끌시끌한 살림살이로 하루를 보내고, 모든 불빛이 사라질 때쯤 펜을 들었다. 아버지의 낯빛이 어두워지고 새벽 귀가가 잦아질 무렵이었다.


엄마는 단박에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엄마가 나라에서 보는 시험에 합격했다니. 뿌듯하면서도 낯설었다. 엄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옆 동네에 있는 도서관을 다니며 최종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집에는 8살인 나와 두 살 터울인 여동생이 남았다. 엄마의 잔소리가 사라진 집은 천국과도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악당을 용서하지 않는 세일러문 언니도 시시해져 버렸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TV가 재미없었던 유일한 시기였다


일단 집을 나섰다. 몇 걸음도 떼지 않았을 때, 도서관에 대한 정보를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는 정보는 단 두 개. 도서관은 옆 동네인 시흥에 있고, 버스는 018-1라는 사실이었다. 겁에 질린 채 버스 기사 아저씨를 붙잡고, 묻고 물어 한 시간 만에 도서관에 도착했다. 하나로 단정하게 묶은 머리, 고동색 셔츠를 입은 뒷모습이 엄마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는 토끼 눈이 됐다. “점심 먹었어?” 다정한 엄마의 목소리에 잊고 있던 허기가 몰려왔다. 엄마는 롯데리아로 우리를 데려갔다.


엄마는 데리버거 두 개를 시켰다. 잘 잘리지도 않는 빵을 열심히 도려냈다. 이리저리 재료들이 튀어나와 모양은 엉망이 됐지만 맛은 우수했다. 달콤하고 짭짤한, 햄버거의 감칠맛이 입 안을 맴돌았다. 엄마를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리버거가 롯데리아에서 가장 싼 햄버거라는 사실을 깨달을 무렵, 당시 엄마가 1300원만 가지고 도서관에 다녔다는 걸 알게 됐다. 1000원짜리 김밥 한 줄과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잔을 먹을 돈이었다. 엄마는 다음날, 그다음 날엔 자판기 커피 한잔을 먹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 데리버거는 이렇게 푸짐하지 않습니다


15년 만에 데리버거를 먹었다. 신촌 로터리에서였다. 한 시간을 달려 토익학원에 다녔다. 수업비를 내고, 교재를 사고, 시험 응시료를 내니 조금이나마 모아둔 아르바이트비가 바닥을 드러냈다. 아침 일찍 수업을 듣고 나면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점심을 먹고 다시 학원에 돌아와 공부를 할 셈이었다. 남은 돈에 학원에 가는 날을 나누니 3500원이 떨어 맞았다. 매일 ‘미션 임파서블’을 시행해야 했다. 3500원에 맞는 점심밥을 찾기 위해 신촌 이리저리를 배회했다.


신촌 로터리에 있는 롯데리아가 눈에 띄였다. 데리버거는 여전히 롯데리아에서 가장 싼 햄버거였다. 햄버거 세트를 먹어도 캔 커피 하나 사 먹을 수 있는 돈이 남았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데리버거를 주문했다. 15년 전과 비교했을 때 가격뿐만 아니라 맛도 여전했다. 달콤하고 짭짤한 햄버거다운 맛이 입안에 퍼졌다. 재료가 신선하지 않더라도 데리야끼 소스 하나만 있다면 햄버거 맛은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햄버거는 ‘달달’한데 자꾸만 씁쓸한 맛이 입에 맴돌았다. 콜라로 입을 헹궈도 씁쓸함은 가시질 않았다. 엄마도 그때 데리버거가 쓰게 느껴졌을까. 가장 싼 가격으로 보통의 품질을 내는 데리버거가 왠지 미워졌다. 어릴 적 먹었던 데리버거는 특유의 ‘단짠’으로 나의 혀를 속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 맛이 속임수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차라리 몰랐더라면 싶었다. 데리버거가 가장 맛있는 버거인 줄 알았던 날들이 오히려 마음만은 편하게 느껴졌다.


달콤함에서 오는 모순된 씁쓸함을 곱씹어보았다. 혀에서 시작돼 나의 전체를 휘감은 씁쓸함의 근원지는 불안감이었다. 10년 전과 다름없이 데리버거를 먹는 내가, 10년 후에도 계속 데리버거를 씹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과연 육즙이 뚝뚝 떨어지고 치즈가 흘러넘치는 수제버거를 먹게 될 수 있을까. 데리버거에서, 데리버거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의문들이 나를 마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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