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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LAXY IN EUROPE May 31. 2024

꿈을 꾸다

내 안의 불안이 나를 구원할지어다

새벽 4시 51분, 눈을 떴습니다.

꿈을 꿨거든요. 꿈속에서 뭔가 강렬한 냄새를 맡으며 깼는데 어떤 냄새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네요. 생각이 많고, 머리가 복잡하면 이렇듯 강한 자극을 받는 꿈을 꾸곤 합니다. 큰 단지에 물을 끓여서 수증기가 가득한 꿈이나 네온사인의 불빛이 반짝이는 꿈, 5층짜리 건물 높이만큼 공중 점프를 하며 서울 시내를 누비는 꿈 등 자극적인 꿈들을 꾸고 일어나서 왜 이런 꿈을 꿨을까 멍하니 누워있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죠. 꿈에 우주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는데 양념게장을 챙기다 손에 묻은 양념장을 빨며 느꼈던 짠내가 아직도 느껴지는 듯합니다.


사실 이 꿈들은 내가 그대로 꾼 게 맞는지, 꿈에서 깨어서 각색한 것인지 알 방도가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꿈들을 꿨을 땐 내 마음에 뭔가 걸리는 게 있을 때라는 거예요. 처음 자극적인 꿈을 꿨을 땐 ‘이런 꿈을 왜 꿨을까? 어떤 의미가 있지?’라며 꿈해몽 하느라 바빴는데요. 이 꿈들은 길몽도 흉몽도 아니고, 그저 내 심란함을 반영했을 뿐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럼 오늘 꿈을 꾸게 한
나의 불안은 무엇일까요?


오늘 꿈속에서 난 여행자처럼 보였어요, 오랫동안 멀리 떠났다 돌아온. 친구와 가족, 가까운 이들 3명을 차례로 만났는데요. 나를 보는 그들의 눈은 어색했고 거리감이 느껴졌어요. 얼른 만남을 끝내고 싶어 하는 티가 물씬 났달까요. 그렇게 마지막 친구와 헤어질 때 그 친구가 만드는 음식 냄새를 맡고 깨어났어요. 그리고 몇 분을 멍하니 그대로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 냄샌 옅어졌지만 그 세 명의 관심 없는 듯한 눈빛과 표정은 강해졌는데요.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건 난데?


요즘 무엇을 보던, 무엇을 하던, 무엇을 먹던 심드렁했거든요. 특히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었어요. 아침에 물 마시러 나갔다 부엌에서 마주친 엄마와의 아침 인사도, 오랜만애 걸려온 언니의 안부 전화도, 어쩌다 만나자고 연락온 친구의 카톡도 부담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관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그저 대충 답하고 때우기 급급했어요. 그렇게 지나갔다고 느꼈는데, 이렇게 반대 상황으로 미러링을 하게끔 꿈에 구현된 걸 보면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나 봅니다.


심드렁함은 힘이 빠지는 반응이죠.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하는 말도 있잖아요. 내 에너지가 고갈되어 힘들다고, 그러니까 힘이 좀 빠져있겠다고, 이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고, 힘이 없는데 어떻게 힘을 내냐고 했던 생각들이 꿈을 꾸고 나니 참으로 이기적이게 느껴집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에너지까지도 쭉쭉 빨아먹는 해리포터 이야기 속 디멘터(dementors)와 똑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렇게 꿈에서 깨자마자 이불속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마음을 먹기 위함입니다. 나의 에너지가 고갈되었다고 남의 에너지까지 빨아들이진 않겠다는 결심이에요. 오히려 남은 에너지를 쥐어짜 내면 나라는 엔진에 불이 붙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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