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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절의 Mar 14. 2024

난임이 나에게 알려준 것들

이 당연한 걸 나는 왜 지금 알았을까

1. 남의 가족계획은 묻지 말자. 


난임을 진단받기 전의 나는 친구와 동료들에게 버릇처럼 가족계획을 물어봤다. 그 당시 나는 아이 몇 명을, 언제 낳을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가 순수하게 궁금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알 만한 양반이 왜 그랬을까 싶다. 뻔히 난임이라는 어려움이 도처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적인 질문을 해댔다. 그래서 아기가 없는 동료에게 언제쯤 아기를 가질 생각이냐는 멍청한 질문을 했고, '그러게요~ 난임인가 봐요.'라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미안해서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다.


반대로, 나에게도 그런 질문은 일상적으로 들어온다. 아마도 출산을 매일같이 보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동료들 사이에서는 출산이 디폴트 값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다. 그저 상대방이 젊고 건강해 보여서, 난임의 가능성을 잊은 채, 상대방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하루라도 젊을 때 아기 가져~'라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진짜, 정말로 궁금해도 상대가 먼저 본인의 가족계획을 얘기하기 전엔 묻지 않기로 했다.


2.  가진다고 하니, 되게 갖고 싶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게 된다. 이건 마치 20대에는 예쁜 친구가, 30대에는 부자인 지인이 부러운 것과 비슷하다. 이제는 귀여운 아기와의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지인들이 제일 부럽다. 남편도 마찬가지인지 길에서 부모 손을 잡고 가는 조그마한 아이를 보면 고개가 저절로 돌아간다. 사실 결혼 전에는 아기가 지나가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던 것 같다. 난임을 진단받은 후, 지나가는 모든 아이가 사랑스러워 보이고, 조그마한 손가락과 통통한 볼이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타인과의 비교가 불행의 씨앗이라던데...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라던데...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부럽다. 


3.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꽤 야심차고 의기양양했던 나에게, 난임은 인생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음을 가르쳐줬다. 결혼 전의 인생에서 성취란 하루를 분 단위로 계획하고, 최선을 다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공부, 일, 다이어트, 심지어 연애와 결혼도 진심을 다해 노력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이 이제야 뼈 저리게 와닿는다.


열심히 노력하면 될 거라는 생각은 어리고 자신만만했던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 노력은 인간의 몫이지만 그 외에 운도 크게 작용한다. 유전적, 환경적, 시대적인 상황이 받쳐줬을 때나 인간의 노력이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노력으로 이뤄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운이 좋았던 것들이었다. 운 좋게도 안정된 사회에서 태어났고, 운 좋게도 특별히 아픈 데가 없었고, 운 좋게도 나의 선택을 지지해 주시는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행운들이 있었기에 노력을 할 수라도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니까, 2세 계획에 있어서는 유전적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이다.


4. 그럼에도, 노력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오히려 더 많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 볼 것이다. 임신과 건강한 출산은 분명 행운이 따라야 한다. 행운은 내 생각과 의도대로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원하고 그리는 미래가 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노력해보려 한다. 건강한 식단과 운동을 하는 일상적 노력과, 평온한 마음을 연습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배우자에게 의지도 하고 의지처도 되어주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같은 상황의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도울 수 있는 인격체가 되었으면 한다.


난임만을 생각해 보자면 유전적 로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난임 시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난 운으로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의 어려움은 분명 미래의 성장과 같은 의미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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