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시술 전 필요한 검사를 완료하였고,난자를 채취할 차례다. 자연에서는 한 달에 한 두 개 정도 배란될 난자를 약물을통해 여러 개를키워서 뽑아내는 것이 이번 달의 목표이다.
상세히 자가 주사 스케줄을 설명해 주시는 나의 난임 선생님께 연신 씩씩하게 넵! 넵! 을 외치고 받아 든 가방에는 주사제가 잔뜩 들어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비의료인 남편은 당연히 누구를 찔러본 적이 없는 데다가 주사 얘기만 들어도 긴장을 하는 사람이고, 매주 수술을 집도하고 매일 피를 보는 나는 놀랍게도 셀프 주사를 (지금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를 찌르지 못한다. 정확히는 내 살에 바늘이 들어가는 것을 못 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과학 실습 시간이었다. 본인의 혈액형을 검사해 보는 간단한 실습 시간이었는데, 손끝을 작은 바늘로 찔러 나온 피를 시약에 섞어 항원-항체 반응이 생기는지 보는 실험이었다. 특별히 겁이 많거나, 피에 예민한 편도 아니었던 나는 별생각 없이 내 손가락 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바늘을 푹 찔렀다. 어? 그런데 잘 안 찔렸나 보다. 피가 잘 안 나오고 옅은 통증만 있기에 다시 한번 더 채혈을 시도하려 했다. 순간 속이 메스껍고, 말 그대로 눈앞이 노래졌다. 처음 느껴보는 몸의 고장(?)에 당황하여 잠시 물을 마시고 오겠다 하고 교실 밖의 정수기로 향했다. 정수기로 향하는데 지축이 흔들리는 불안정한 느낌이었다. 정수기 옆의 전신 거울을 보니,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미주신경성 실신 직전의 상태였다.
신생아 때부터 청소년기까지 받아본 아픈 시술이라고는 백신 접종밖에 없었던 나는, 주사는 덤덤하게 잘 맞아왔기에 이 새로운 발견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간호사 선생님이 찌르는 백신 주사나, 정맥 채혈 같은 경우 고개를 돌리고 내 살에 들어가는 바늘을 직접적으로 보지 않았기에 괜찮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지금도 여전하다. 채혈도, 주사도 괜찮지만 살에 바늘 들어가는 걸 보면 어지러움이 생겨 고개를 돌려 피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매일 같이 자가 주사를 할 생각에 사뭇 비장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매일같이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환자분들은 칼로, 바늘로 잘도 찌르면서 본인 살은 못 찌르는 이 앙큼한 습성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걸 넘어, 새로운 실험을 해보려 한다.
주사치료할 때 통증을 줄이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주로 피부과 치료에서 쓰는 방법으로 아래와 같은 방법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1. 얼음팩 대기 : 보톡스 같은 미용 주사를 맞아봤다면, 냉동고에서 꺼내주는 차가운 롤러를 써본 적 있을 것이다. 통증 조절을 위한 얼음팩 사용은 역사가 깊다. (대충 찾아보니 1994년 논문도 있다.)[1] 차가운 온도가 신경의 반응 역치를 높이고, 시냅스 활동을 줄여주기에 주사 통증을 줄이는 데에 효과가 좋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2]
2. 주사 부위 옆에 진동 주기 : 이 또한 주로 피부 미용 시술에서 사용되는 방법이다. 통증 부위 옆에 진동을 주면 좀 덜 아프다는 건데, 의학 용어로는 'vibratory analgesia'라고 한다. 통증과 진동 감각을 느끼는 신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용한다는 방법이다. [3][4] 마침 학회에서 받은 통증 조절용 진동기가 있어 이용해보려 하는데, 없으면 집에 있는 마사지건을 이용하거나 인력을 이용해 (남편 소환) 주사 부위 옆을 손가락으로 두드릴 수도 있겠다.
3. 뱃살 꽉 잡은 상태에서 주사하기 : 이건 왠지 좀 덜 불안할 것 같아서, 뇌피셜이다. 효과가 있을까?
우선 떠오르는 건 이 정도인데, 자가 주사의 역사가 긴 만큼 (난임뿐만 아니라 당뇨에서도 자가 주사를 하곤 한다.) 사람들의 지혜가 쌓여 이미 여러 가지 방법이 고안되어 있을 것 같긴 하다. 어쨌든 1주간 직접 시도해 보고, 나름의 결론을 내서 업로드하려 한다. 주사 시간을 실험 시간으로 만들면 조금 덜 싫지 않을까 하고, 더불어 앞으로 주사 맞을 일이 생길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Reference
[1] Edzard Ernst, Veronika Fialka, Ice freezes pain? A review of the clinical effectiveness of analgesic cold therapy, Journal of Pain and Symptom Management, Volume 9, Issue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