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병원에 근무하던 시절, 복수 천자는 단연코 나의 최애 술기였다. 간 기능에 문제가 생겼던지, 암의 진행으로 인한 것이던지 많게는 4~5L의 물이 배에 고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거동이 힘든 것은 물론 숨 쉬기도 힘들어진다. 그리고 이 정도의 증상이 생길 정도면 외관상 배가 마치 터질 것 같은 풍선 같은 모습처럼 된다. 이때, 일련의 준비 과정을 거쳐 손바닥 길이의 왕바늘을 슬며시 배에 찔러 넣는 데 성공하면 그야말로 폭포수처럼 노란 복수가 흘러나온다. 다른 술기에 비해 걱정할 것은 적은 반면, 2~3L 정도로 충분히 물을 빼내면 환자분의 그야말로 속 시원해하는 모습에 쾌감이 드는 술기이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인턴 때 하던 복수 천자가 간절히 생각나는 것은, 내가 복수가 찼기 때문이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으니 무조건 증상이 생길 것이라고 하셨던 나의 난임 선생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난자 채취 후 거진 1주일 간 아무 불편감 없어 '나는야 럭키걸~'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부터, 즉 배아 이식을 한 지 이틀 차부터, 꽤 악력 좋은 누군가의 주먹이 내 뱃속을 잡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배 초음파를 대어보았더니, 골반 높이까지 복수가 차 있었다. 심한 경우 배 전체가 복수로 미어지기도 하니, 이 정도면 양반이다. 어쨌든 지하철을 못 타거나, 진료나 수술을 못 할 정도는 아닌데 여하튼 몸이 가뿐하지 않고 어딘가 불편한 상태이다.
막간을 이용한 셀프 초음파. 까만 건 물이고, 하얀 건 장기이니라
난임 시술 시 복수가 차는 이유는 혈관의 투과성이 높아져서 혈관에서 물이 줄줄 새기 때문이다. 혈관에 들어가 있어야 할 물이 죄다 배 안에 고여있으니, 계속 목이 마르고 탈수 증상이 생긴다. (너무 퉁친 설명이라, 정확한 메커니즘이 궁금하신 분이 있을까 봐 논문 그림을 첨부합니다.) 그러다가 소변양이 줄거나, 안 나오면 그건 정말 큰일이다! 그러니 병원에서 안내한 대로 열심히 수분 섭취하고, 숨이 차거나 소변이 줄어드는 것 같으면 꼭 병원을 방문하자.
근데 궁금하신 분이 계실까..? 안물안궁이려나.. [1]
그리하여, 이틀째 계속 배가 부른 상태이다. 내 생에 식욕이 없던 날은 손에 꼽힌다. 아니, 손에 꼽을 정도의 예시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물며 코로나에 걸렸을 때에도 밥만 잘 먹었는데! 그런데 이틀 내내 배가 부른 진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 점심에 샐러드 깨작거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과식이라도 한 것 마냥 더부룩한 상태라니, 나도 이럴 수 있는 몸이구나 싶어 은근 뿌듯하다(?) 그래도 배아 이식을 한 상태이니 너무 굶진 않도록 삶은 계란이라던지 견과류라던지 조금씩은 먹으려고 하는 중이다.
어찌 되었든 난소과자극증후군은 따 놓은 당상이며, 입원도 하게 될 것이라 미리 생각하고 있으라는 말을 들은 것에 비해 수월히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이식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시험관의 꽃말은 기다림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