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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절의 Feb 02. 2024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편이 수술대 위에 오른 날

냄새를 좋아한다.

풀 냄새가 나는 스킨 냄새, 꼬릿한 강아지 발바닥 패드 냄새, 그리고 아기 정수리에서 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냄새.

아기인 조카를 무릎에 올려놓고 책을 읽어줄 때 대놓고 조카의 정수리에 코를 박고 냄새 맡는 걸 즐겼다.

2세와의 일상을 상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아기 냄새에 흠뻑 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연히 내 인생에 있을 줄 알았던, 아기 냄새에 취해있는 장면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



착잡했다.




남편이 micro TESE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한 날, 나는 일하고 있었다.

근무 내내 마음이 불안했지만, 내심 일할 때는 시간이 빨리 가기 때문에 남편의 수술이 끝나기를,

그리고 마취에서 잘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가 마취에서 깨서 처음 나에게 보낸 카톡,

'1통 나왔다네'.

통상적으로 1통의 정자면 1회의 시험관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정자의 질에 따라 아예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최대 한 번의 시험관이라니.


일과 시험관 시술을 어떻게 병행할지 혼자서 상상 속의 계획을 세우고 있던 차에,

'아 시험관도 못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또다시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에게 진료를 보러 내원한, 임신한 엄마를 따라온 또랑또랑한 체리 같은 첫째 딸을 보며,

길 가다 마주친, 본인의 신체비율에 비해 너무 기다란 어그부츠를 신고 뚱땅뚱땅 걸어 다니는 아기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너를 탓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혹은 최악으로, 그걸 실수로라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잘못 아닌 거, 다 안다.

그를 탓하지 않아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묘하게 그가 나에게 미안해해야 한다는 나의 무의식이 들킬까 봐 두렵다.



 

퇴근 후 남편이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코로나 이후 보호자 상주는 최소만 가능하여,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경우 한 명의 보호자만 있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환자 베드 외에는 앉을 수 있는 의자도, 간이침대도 없었다.


수술 받은지 몇 시간 되지 않은 남편을 간병한다는 명목 하에

침대 발치에 앉아있다가,

베드 사이드레일을 내리고 옆에 앉아있다가,

슬금슬금 더 편한 자세를 위해 기대어 있다가,

밤이 되자 슬그머니 남편 옆에 누웠다.


매일 밤 집에서 그러하듯 서로 머리를 대고 누워서,

남편의 뜨끈한 체온과, 내가 좋아하는 그의 냄새에 취해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아저씨 냄새겠지만)

나도 모르게 잠시 눈을 붙였다.


그래, 시험관을 못하게 되고, 아기 없는 부부가 되어도,

나는 너의 체온과, 따뜻한 , 그리고 지금처럼 별거 아닌 일에도 까르르 웃는 우리가 있다면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다.


내 인생에 너의 존재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할 수 있다고

마음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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