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시절 내가 보고 배우던 명망 높으신교수님들은, 유명하신 만큼 조금만 검색해 보면 쉽게평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의 정보는 맘카페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내부자만 알거라 생각했던 괴팍한 성미를 날카로운 촉으로 맞추는 경우도 있고,밖으로는 퉁명스러워도 누구보다 환자를 위하는 마음을 가진 교수님이지만야속하게도 '친절하지 않다'라는 평이 있기도 했다.
나는 소심한 동시에 인정 욕구가 강하다.
환자분의 수줍은 칭찬 한 마디에 기분이 한껏 고양되어 퇴근 시간만을 기다렸다가 득달같이 남편과 친청 엄마에게 전화해서 오늘은 이런일이 있었다고 자랑하곤 했다. 반면 혹시라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까 봐 병원 리뷰를 뒤적이기도 한다.이런 나에게, 평가의 장인 맘카페는 두려움의 존재였다.
그런데 의욕 없이 침대에 옆으로 누워 '난임' 'TESE 후기' 등의 키워드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명 맘카페로 흘러들어 가게 되었다. 6~7년 전에도, 지금도, 나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아주 사적인 감정과 생각, 해프닝 등을 읽어나가며 반나절을 보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만 겪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타인의 존재는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매일같이 한 두 명 정도는 임신이 안되어 고민하는 분을 만나면서도, 맘카페에서 난임을 겪는 당사자가 직접 쓴 글을 읽는 것의 효과가 훨씬 컸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더니, 같은 일을 겪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깊은 안도감이 들었고 우울했던 기분마저 가벼워졌다. 와중에 오랜 기간의 고생 끝에 예쁜 아기를 얻게 되었다는 분의 난임 졸업글을 읽으며 내적 환호와 응원을 내질렀다.
진료를 하다 보면, '많이 생기는 질병인지'에 대한 질문을 꽤 받는다. 동일한 질환을 진단받은 사람이 있던 없던, 본인의 질병 생리는 독특하고, 치료에 대한 반응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같은 질병을 가진 사람의 존재 여부는 실상 나의 질병의 경과에는 아무 상관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 어떤 훌륭한 위로보다 같은 처지의 사람과의 연대와 공감이 우리의 슬픔과 외로움을 덜어내어 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표적으로 암환우 분들의 카페 '동행'이나, 출산과 육아, 그리고 난임이라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겪는 여성들의 연대가 맘카페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일상이 평온하고 고민이 없을 때에는 나의 하루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어려움이 생기니 불안과 외로움을 다스리기 위해 커뮤니티를 찾았다. 해당 커뮤니티의 활성도와 영향력을 보았을 때 이는 비단 나만 보이는 행동이 아니고, 어쩌면 생존을 위해 무리를 형성하는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난임' 키워드로 맘카페와 브런치스토리를 헤매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사람들의 은밀한 감정을(아마도 그들의 친한 지인마저 모를)읽어 내렸다. 난임 진단 후의 당혹감, 배우자가 열심히 따라주지 않아서 느끼는 분개, 친정과 시댁 부모님과의 갈등을 보며, 내가 아직 겪지도 않은 일을 예습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다. 아기를 가질 수 있을지 여부는 모르지만, 일단 나도 나의 감정을 정리하고, 그리고 나와 같은 일을 겪는, 혹은 겪을 다른 사람의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위로할 수 있도록 글을 공유해 봐야겠다고 결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