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녹투라마
“밤이 선생이다”[1] 라는 산문집 제목이 떠올랐다.
지난 몇 해 동안 작가 권도연이 움직였던 광활한 궤적,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숲 속 자리, 마른 음식을 삼키며 장비를 매만지던 까끌한 시간에 대하여 상세히 묻지 않았다. 작업 이야기가 고생담으로만 기울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누군가 보냈던 시간 속에 한 움큼의 상상을 슬쩍 더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간간히 전해 듣는 작업 소식과 카톡 창으로 받아보는 이미지 조각들은 아득하다 싶을 정도로 멀게 느껴진다. 그 아득함을 가까이 당겨오기 위해 카메라 프레임의 바깥에서 일어났을 온갖 성가신 일들과 그만큼의 지루함을 공평하게 짐작해 본다.
운무에 덮인 산 정상, 적막이 내려앉은 낯선 동네 어귀, 경계면 어디든 비슷한 질량으로 존재하는 열화된 풍경이 묻어나온다. 온통, 밤의 정경이다. 새벽부터 황혼까지 높아졌다 낮아지는 태양의 움직임과 관계없이 온 하루가 밤을 향해 달려가는 것만 같다. 마침내 도달한 곳은 땀내 가득한 삶의 생동과 예술적 몽상, 해찰과 해방으로 가득했을까?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피로와 불면으로 가득한 도시의 밤을 건듯 흘려버리고 나는 반대편의 또 다른 밤을 생각해 본다.
이윽고 전시장에서 마주한 흑백 사진 속 꽃사슴, 여우, 산양, 고라니, 까마귀 떼. 어여쁘기도, 안타깝기도, 기이하기도, 경이롭기도 하다. 사람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들의 시간과 공간에서 원래부터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생명을 박탈당할 결정적 위기에 처해 있는지, 갖은 훼방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보란듯이 살아남은 존재인지 사진은 단서를 주지 않는다. 권도연은 몇 해에 걸쳐 울진, 울산, 영주, 멀리 순천과 부산까지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야생동물을 추적하여 기록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해 왔다. 작업의 보폭과 진행 속도에 맞춰 결과물이 쌓여 왔고, 일련의 시도들은 관점에 따라 야생 동물의 초상이자, 도시와 산속을 오가는 풍경사진의 요소가 겹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폭넓게 생각해 본다면 지금까지의 작업을 꼭 사진매체의 관점에서 분석, 비평할 당위는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사진적 수행과 시각화를 주요한 방법론으로 삼은 기록과 연구활동이자, 퍼포먼스, 액티비즘으로 통합하여 접근하는 편이 옳을지 모른다. 근래의 활동은 전작인 <북한산> 들개 시리즈와 연결되는 작업이고, 2019년 당시의 작품을 보면서도 그와 유사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권도연에게 대상을 촬영하고, 최상의 이미지를 선별해내며, 프린팅과 마운팅을 조율하고, 전시 공간에서의 배치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강화하고, 글로써 이미지를 보완하는 일련의 과정은 어쩌면 작업의 전 과정에서 아주 단편적인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같은 이유로, 전시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의 한 대목만을 잘라 보여주는 단편선일 것이다.
멀찌감치 관전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올해의 작업은 그간의 작업 실천이 압축된 ‘녹투라마’ (nocturama, 동물원에서 야행성 동물이 사는 구역)의 확장판이자, 안전하게 조율을 끝낸 삶의 조건을 벗어 던지기 시작한 ‘안티-녹투라마’의 에피소드다. 그것은 작가가 촬영한 야생동물들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작가의 자전적 스토리이기도 하다. 단정한 스튜디오에서 매일 한 발짝 멀어지고, 되돌아오고, 더 멀리 떠나고, 좀 더 깊숙하게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작업의 원심력이 거세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롭다. 그 속에 非숲이, 非도시가, 非인간이, 非동물이, 非사진이 있다. 권도연의 사진을 응시하며, 갇힌 줄도 모르고 떠나지 않는 낮과 갇힌 적도 없는데 매일 탈출해야만 하는 또 다른 밤을 교차시켜 본다. 어디서나 서식지는 흔들리고 있다. 존재의 원근이 흔들리고 전치된 징후를 목격하는 일은 기이하다. 그러나, 여전히 권도연의 사진이 담아낸 징후들은 강하게 의견을 촉구하거나 대상을 직접 비난하지 않는다. 충분히 멀리, 적당히 가깝게 그렇게 대상과 만나고 헤어진다.
때로 사진을 찍는다는 말은 그 자체로 아쉬울 때가 많다. 다른 용례로서 이미지를 포착했다거나, 결정적 순간을 담았다는 식의 표현도 상투적이긴 마찬가지다. 정황, 맥락, 여지가 결여된 말일 뿐더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원하는 이미지를 획득해내고 마는 포식자, 범인을 좇는 탐정 같은 발걸음을 떠올리게 한다. 권도연 또한 사진을 찍고, 이미지를 포착하고, 결정적 순간을 담는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러나 이미지를 빠르고 얻어내는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가 택한 삶을 사진을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작업으로 그것을 연습하고 증명해내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를 짊어지면, 보기 싫은 것들로부터 손쉽게 멀어지고, 마음이 가는 것들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 사진과 맞닿아 있는 겹겹의 시간을 불러와 터무니없이 오래된 기억으로 돌아가거나, 먼 미래의 시점으로 달아나 소설 쓰듯 이미지를 새롭게 쓸 수도 있다. 권도연은 사진으로 선회하기 전에 문학도였고, 사회와 조직 안에서의 삶을 성실하게 수행하던 일원이었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과 자원을 배분하여 할 수 있는 만큼의 작업을 내놓는 꾸준함과 안정적인 호흡은 어쩌면 오래전 ‘울타리’ 안에서의 삶에서 혹독하게 단련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 여우 한 마리가 있었다.’는 단순한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하는 그의 이야기처럼 현장에서의 시간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에 분명하다.
[2]
권도연은 지난 십 년간 부침없이 작업을 발표해 왔고, 올해로 통상 여덟 번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그 사이사이 다양한 시도를 이어왔고, 스튜디오에서 야외로 작업 환경을 옮겨오게 된 근래 들어 그 변화가 두드러진 것 같지만, 그 안에서의 작업 태도는 일관되어 보인다. 실내 촬영이든, 비박을 해야 하는 깊은 산중의 촬영이든 권도연의 사진은 작업의 기원과 착상, 준비 과정에서의 연구와 대비가 팔 할이다. 평론가 방혜진의 말마따나 권도연은 “발견했기 때문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기 위해 발견을 (재)구성한다”.
[3]
이는 올해 작업에도 여전히 유효한 서술이다. 이미지를 좇는 여정은 초조한 추격보다는 마주침의 소극성에 가깝고, 그러한 과정이 예비되어야 기록의 서사는 설득력을 갖는다. 힐끗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는 여우의 눈동자에 감응할 준비는 그렇게 이뤄진다. 소백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산불이 났던 울진을 거쳐 부산까지 400Km를 종단한 해운대의 붉은 여우를,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절벽의 바위 사이로 움직이는 산양을 편리하게 마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들이 권도연의 카메라를 봐줄 때까지, 우리도 응당 그만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다시 기나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이 여정의 향방은 어디까지일까. 불행일지, 다행일지 권도연의 인내심과 노력에 빚져 훗날 우리가 마주할 존재들이 저 멀리, 어쩌면 아주 가까운 데 있을 것이다. 배움도 가르침도 없는 이 곳에서의 밤을 이제 그만 닫고, 저들 무리의 또 다른 밤이 무사히 열리기를 바래 본다.
글. 조주리 (전시 기획, 미술 평론)
[1]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난다, 2013
[2] 권도연,《야간행》展 작가노트, 더 소소, 2022.12.3-12.30
[3] 방해진, 《권도연 - 섬광기억》展 평문,「시간은 물질로 구축된다, 사진은 물질로 구현된다」, 인천아트플랫폼, 2019.4.10-4.23
권도연
사진을 이용해 지식과 기억, 시각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를 탐색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섬광기억>, 갤러리룩스, 서울, 2018. <고고학>, KT&G 상상마당, 서울, 2015. <애송이의 여행>, 류가헌, 서울, 2011. 이 있으며. 미국 FOTOFEST 비엔날레, 스페인 포토에스파냐 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고은 사진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1년 사진비평상, 2014년 대구사진비엔날레 포트폴리오리뷰 우수 작가, 2015년 7회 KT&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 SKOPF 올해의 최종 작가, 영국 브리티시 저널 오브 포토그라피의 2016 ‘Ones to watch’,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시던시 13기 입주작가, 2018년 미국 FOTOFEST 비엔날레 Scholarship Program for International Artist에 선정되었다.
▲ 권도연, 비숲#순천, 2022. (사진=안산문화재단 제공)[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Anti-Nocturama
The title of an essay collection, Strolling along the Night
[1], came to my mind.
I did not ask Gwon Doyeon in detail about his vast trajectory over the past few years, his spot in a forest where he waited endlessly for something, or his tough and rough time of smoothing his equipment by quietly swallowing dry food. It was out of my desire of not having his work story overshadowed by his anecdotes on undergoing various challenges, and of casually adding a scoop of imagination on top of his time spent there. It seems unfathomable to relate to his text messages sent to me sometimes on his work along with some images on the messenger app of Kakao Talk. And yet, I try to fathom all the hassle and corresponding boredom he had to go through outside his camera frame to zoom in what might be far away. From his oeuvre are sceneries of the top of a mountain covered with clouds, the entrance to a strange neighborhood where the silence fell, and the deteriorated landscape that exists at similar mass everywhere on the boundary surface. It is all about the night. Regardless of the movement of the sun rising and falling from dawn to dusk, the whole day seems to be running toward night. Was the place that he finally reached full of vibrancy and vitality in life, artistic reverie, random strolling and liberation? I don’t think he could have done that. I imagine another kind of night on the opposite spectrum, releasing the image of a city night full of fatigue and insomnia.
And a flock of deer, foxes, goats, elk, and crows in the black and white photos I come across at the exhibition hall – I find them beautiful, pitiful, unique and amazing. The photographs do not give clues as to whether they are living well in their time and space without caring about people, whether they are in a critical crisis of deprivation of life, or whether they survived despite all obstacles and threats. Over the years, Gwon travelled to Uljin, Ulsan, Yeongju, and as far as Suncheon and Busan to track and record wild animals and researched them. Results have been piled up in line with the pace and pace of his work, and a series of attempts might be dubbed as portraits of wild animals depending on the perspective, and overlaps of elements of landscape photography over cities and mountains. However, having come to think about it in a broad sense, his oeuvre goes beyond in putting forth the rationale in analysing and criticizing from the perspective of the photographic media. Rather, it may be right to approach his works by integrating photographic performance and visualization into records and research activities, performance, and activism. It is because his recent works are related to his previous work on stray dogs titled Bukhansan, and I had similar thoughts while looking at his works in 2019. For Gwon, the process of photographing objects, selecting the best cuts, coordinating printing and mounting, reinforcing storytelling through layout in an exhibition space, and supplementing images in writing might be only a little part of the entire course. Likewise, an exhibition is just one short story of an entire one which is to remain unfinished forever.
From the perspective of a viewer of his works at a distance, his works for this year are an extension of “nocturama” (a building in a zoo where nocturnal animals are kept and viewable) and an episode of “anti-nocturama” that has begun to shed off the conditions of life that have been safely coordinated. It is both a story about wild animals he photographed and his autobiographical story. It is interesting to watch the process of work of repeatedly taking a step away from a neat studio, coming back to it, leaving further, and returning deeper, which ends up intensifying the centrifugal force of his work. Within the cycle lie those that are not a forest, a city, a human or a photo. Staring at his works, I cross the day which does not leave me where I do not even know I am trapped, and the night which I have to escape from every day. Habitats are shaken up anywhere. It is bizarre to witness signals where the distance of beings is shaken and transposed. However, the signals of Gwon’s photos are not thought-provocative or straightforwardly critical of objects. They encounter and leave the objects far enough and moderately closely.
Sometimes, the expression of taking photos per se seems to miss out on something. Other expressions – capturing images, and containing the decisive movement – are also clichéd. They fail to convey circumstances, contexts, and room for further thoughts, and remind me of steps of a predator who acquires the image he wants at all costs, and a detective tracing a criminal. Gwon also chose to take pictures, capture images, and capture critical moments for himself. However, rather than focusing on getting images quickly, he learns how to live the life he chose through photography and practices and proves it through work. Once he is holding his camera, he can easily move away from the things he does not want to see and see those he wants to see as much. He can call in layers of time embedded in his photos to return to absurdly old memories, or create a new image like writing a novel in the future. Gwon must have been a literary person, and lived a faithful and hard-working life in the society and organization he belonged to. The steady and stable pace of distributing his given time and resources and doing as much work as possible must have been a result of his harsh discipline in life of “confines” long time ago. However, as he said, “My effort required to write a simple sentence, ‘There was a fox here,’ was beyond imagination,” it is clear that time he had to endure on the spot was never an easy process.
[2]
Gwon has been presenting his work steadily for the past decade, and has held eight solo exhibitions as of this year. In the meantime, his wide-ranging trials have continued on, and the change seems to be noticeable in recent years when his working environment has been moved from the studio to the outdoors, but his working attitude seems consistent. Whether shooting indoors or working and sleeping out in the open in the deep mountains, he spends about 80 percent of his work on prior research and preparation – ideation, inception and kickoff – in his photographical work. As critic Bang Hyejin said, Gwon Doyeon “(re)configures discovery to record, not recording what has been discovered.”
[3]
Such a review can be applied to his work for this year. His journey to follow images of objects is more of a passivity of encounter than an anxious chase, and the narrative in his record only gets persuasive when all is thoroughly set. That is how he prepares to respond to the eyes of a fox looking at the audience by quickly turning its head. We as the audience would never be able to easily come across a mountain goat moving through the rocks of the cliff which nobody can climb to as well as a red fox of Haeundae that travelled 400 kilometers from Sobaeksan Mountain to Busan through Uljin because of a forest fire broke out along the east coast of Korea. That is why we should be patient until the animals as objects look at Gwon’s camera.
Another long winter began again. How far will this journey go? Whether it is misfortune or luck, what we would encounter in the future would be far away from us or maybe very close to us in return for Gwon Doyeon’s patience and endeavours. I wish that we could close our night at this place where there is no learning or teaching, and another night of the flocks could be safely opened.
Critic: Cho Juri (Curator, art critic)
[1]
Hwang Hyeonsan, Strolling along the Night, Nanda, 2013
[2]
Gwon Doyeon, Artist Note for Nocturama exhibition, The SoSo, Dec.3~30, 2022
[3]
Bang Haejin, Critique on the exhibition of Gwon Doyeon-Flashbulb Memory, “Time is built of matter, and photography is embodied of matter”, Gallery Lux, Mar. 29~Apr. 22,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