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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원 Jan 08. 2023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화난 원숭이 실험과 조직문화

조직문화는 회사의 심장이라 부를 만큼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스타트업의 조직문화는 대체로 기업의 DNA라고도 불리는 초기 멤버들에 의해 발아되어 조직이 성장함에 따라 함께 성숙해진다. 조직문화의 절대적인 선함과 악함, 좋음과 나쁨이 있는 건 아니지만, 모든 조직문화는 선택과 대가로 이루어져있다. 그걸 잘 이해하고 나와 조직, 그리고 조직이 처한 환경을 고려한 적절한 선택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외양간은 소를 잃고 나서 고쳐도 된다", "빌런이 나타나면 그때 대책을 세우자"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화난 원숭이 실험

조직문화와 관련해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실험은 화난 원숭이 실험이다. 1994년 미국 경영학 서적( Competing For the Future)에서 소개된 이 실험은 맥락이 소실된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준다. 실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4마리의 원숭이들이 한 방에 있다. 그리고 긴 장대의 꼭대기에 바나나를 매달아 두었다. 배고픈 한 마리 원숭이가 그것을 먹으려고 장대를 타고 올라가 바나나에 손을 뻗는 순간, 천장에서 찬물이 뿌려진다. 놀란 원숭이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머지 원숭이들도 바나나를 먹으려고 시도했지만 장대에 오를 때마다 번번이 찬물 세례를 받는다. 여러 번 반복되자 원숭이들은 바나나를 먹으려는 시도를 아예 포기하게 된다. 
2. 이때 기존 네 마리 중 한 마리를 새로운 원숭이로 교체하였다. 새로운 원숭이가 장대에 오르려고 하자 나머지 세 마리 원숭이가 이를 말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차근차근 한 마리씩 기존 원숭이를 새로운 원숭이로 교체시킨다.
3. 모든 원숭이가 교체된 후 장대 위의 샤워기도 제거해 버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감히 장대에 오르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새 장대 위의 바나나는 만져서는 안 되는 금기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장대 위에 샤워기(원인)가 있어 바나나를 만지면 찬물 세례(결과)를 받기 때문에, 바나나가 먹고 싶지만 포기(대가)하고 만지지 말자(규칙)는 시스템이 아무튼 안돼,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로 바뀌어 버린다. 얼핏 생각하기에 조직의 best practice가 잘 유지되는 걸로 보이지만, 샤워기를 제거시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규칙 이면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조직이라면 샤워기가 제거된 순간 기존의 규칙을 재검토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조직은 기존의 금기를 유지하고 계승하여 공고히 할 뿐이다. 조직이 성장함에 따라 금기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부모님 된 심정으로 조직을 보면 시행착오 없이 꽃 길만 걷게 해주고 싶지만 때로는 이런 배려가 독이 된다. 일어나지 않은 문제를 가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건 그 자체로 어렵지만, 설사 그 대책으로 인해 문제를 방지했다 하더라도 구성원에게는 애초에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될 뿐이다. 모든 조직문화는 선택과 대가가 있다. 앞 선 실험처럼 우리는 어떤 이유로 어떤 결과가 우려되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내렸고, 그 선택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선택 그 자체보다 중요한 건 맥락, 즉 이유와 결과와 대가이다. 소를 잃기도 전에 외양간을 고치자는 결정은 구성원들에게 그저 불필요한 규칙의 추가로 느껴질 수 있다. 


이전에 쓴 수평적 조직이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글은 우리 회사가 초기부터 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학습의 결과이기도 하다. 초기 10명 남짓의 멤버들은 나이대로 비슷하고 사적으로도 가까워 회사 내 위계와 R&R 구분이 강하지 않았다. 때문에 거의 모든 이슈를 포지션 불문하고 다 같이 머리 맞대고 고민하던 시기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매우 빠르게 올라갔고, 어느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그때부터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을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고 R&R을 더 명확히 하는 방향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리더급 회의를 분리시켰다. 일반적인 회사와 비교하면 매우 늦은 시점이었다. 동시에 개별 구성원들은 나한테 충분한 정보가 오지 않는다는 아쉬움, 회사의 의사결정에서 멀어진다는 소외감을 느꼈다. 그제야 우리는 우리의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인한 대가를 알게 되었다. 높은 커뮤니케이션의 비용을 감당하고 보다 수평적 조직을 유지할지, 아니면 효율적으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조직을 선택할지, 장점만 취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경험이 더 많은 리더라서 규모에 따라 필요한 수준의 위계와 R&R을 정확히 짚어 낼 수 있었다면 더 나았을까? 아닐지도 모른다. 이해되지 않는 불합리한 문화(수평적 조직에서는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비용과 체계 없음, 수직적 조직에서는 부품에 불과하다는 소외감)를 용인하는 구성원들로 가득 찰 수도 있다. 소를 잃는다는 행위는 조직 전체가 외양간을 고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깨닫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귀찮고 피곤한 행위를 왜 해야 하는지 마음 깊이 이해하는 소중한 집단경험인 셈이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선택이며 대가를 수반한다. 구성원 모두에게 맥락을 강하게 심어주기 위해, 첫 번째는 소는 포기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소가 목숨이어서는 안 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해 주지만, 나를 죽이는 고통은 죽음을 남길뿐이다.



조직 문화는 시스템의 집합체가 아니다

조직문화는 단순히 시스템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 안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경험과 기억과 생각 역시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화난 원숭이 실험은 훌륭하게 동작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그 시스템 이면의 의도와 목적이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시스템은 우리를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정한 틀에 갇힌 존재로 만들 뿐이다. 이는 마치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식을 암기해 문제를 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매우 정적인 환경에 놓여있는 조직은 공식을 암기하는 것으로 충분하거나 더 효율적인 방법 일 수 있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바뀌는 환경에서 세부 조율을 통해 그 순간의 로컬 옵티멈을 끊임없는 찾아나가야 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더더욱 결정된 시스템 자체보다 그 배경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훨씬 중요해진다. 샤워기가 제거되면 기존의 시스템은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하고,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시스템은 반드시 도전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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