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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ez May 24. 2020

프로덕트 오너의 갈림길

프로덕트 오너, 김성한

기획자로서 4년 반 동안 운영하던 서비스를 접어야 했던 적이 있다. 하나의 서비스를 오롯이 새로 만들어 론칭하는 것만큼 경험하기 어려운 게 멀쩡한 서비스를 클로징하고 관짝을 닫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사용자들이 있는데 어느 한순간에 "오늘부터 문 닫았으니 이제 오지 마세요" 하고 내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가망이 없는 서비스여도 전격적인 클로징은 쉽게 결정할 수 없다. 업데이트를 뜸해지고 간신히 유지 보수만 진행되다 서서히 사용자 유입이 줄어들면 슬쩍 서비스 종료를 고지하는 게 보통의 수순이다.


그럼에도 회사 차원에서는 서비스 종료를 결단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더이상 가망이 없는 서비스를 언제까지고 끌어안고 있을 수만은 없는 까닭이다. 최근 읽은 책 <프로덕트 오너>(김성한 지음)에서는 이 고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프로덕트를 아예 없애기로 회사에서 결정할 수도 있다. 특히 게임 업계에서 타이틀을 개발하다 투자를 접는 경우가 잦다. 구글 같은 큰 회사에서도 실험적으로 프로덕트를 개발하다 중단하기도 한다. 회사는 본체의 목표 달성을 위해 특정 프로덕트를 희생시킬 수 있다. 자원을 더 잘 분배하고 투자하기 위해서다. PO도 회사의 인적 자원이기 때문에, 다른 프로덕트를 도맡아 책임지면 된다.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집착하는 PO이지만, 회사가 정한 방향성과 목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PO가 사업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경영진의 시각을 이해하고 있어야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참조할 수 있다. PO는 단순히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과 회사 모두가 필요로 하는, 제대로 된 프로덕트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고객에게 계속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려면, 회사가 건강한 상태여야 한다. 그래서 PO가 회사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면, 그 여파는 상당히 크다.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만큼 회사가 정한 목표와 의견에도 집중하도록 하자. 회사가 없으면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기회까지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종료해야 하는 서비스의 프로덕트 오너였던 나는 갈림길에 섰다. 회사의 결정에 수긍할 것인가, 사용자의 편에 설 것인가. 초창기부터 공들여 운영하던 서비스라 관심과 애정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에도 서비스 상태는 나쁘진 않았다. 적지만 꾸준히 매출도 올라 곧 누적 매출 200억 원 달성이 코앞이었다. 무엇보다 콘텐츠 서비스로 이만큼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럼에도 회사의 결정이 내려졌을 때, 나는 반박하거나 비토를 던지지 않았다. 서비스 운영자가 아닌 회사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매출이 발생하지만 회사 규모와 비교해보면 미미한 수준이었고, 창작자들에게 이익을 몰아주느라 영업이익도 거의 나지 않는 구조였다. 한 마디로 회사에 기여하지 못하는 서비스였다. 대체 가능한 서비스도 회사에 존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리는 호승심은 어쭙잖은 것이라 느껴졌다.


고객의 요청과 사업적인 요구사항 중 하나만 극단적으로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래서 식스 페이지를 작성할 때도 맨 첫 문장부터 프로덕트가 회사 전체 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명확하게 명시한다. 회사 전체가 고객을 위한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려고 한다면, 그중 한 부분인 프로덕트도 그에 걸맞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회사 전체에 대한 유기적인 고려 없이 독단적으로 고객을 위한다는 취지로 방향성을 잡는 건 옳지 않다.


현실적으로 회사는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궁극적으로는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수많은 회사들이 매출과 수익 목표를 설정하거나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수립한다. 회사가 생존하지 못하면 고객에게 최상의 경험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PO도 늘 회사의 상태와 목표를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프로덕트 오너가 해야 할 일을 했다. 기존에 결제를 했던 사용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충분히 종료 일정을 유예하고, 창작자들에게는 자신의 콘텐츠를 백업 받을 수 있는 기능을 제공했다. 기타 법무, 개인정보, 회계상 발생할 수 있는 이슈가 없는지 점검하고 고객센터에서 응대 가이드를 준비해 전달했다. 서비스를 통해 잘 이용하고 있던 사용자와 창작자들을 위해 유사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회사 내 다른 서비스에도 미리 연락해두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서비스 종료글을 직접 작성해 고지했다.


종료 공지에 적힌 날짜가 끝은 아니다. 공식적인 서비스 종료일이 지나고 나서도 운영자는 손을 놓을 수 없다. 종료 이후 진입하는 사용자들을 대비해 도메인을 유지하고 서비스 종료 안내를 유지해야 한다. 종료 이후 들어오는 고객 문의를 대응하며 사내 보고할 종료 리포트를 준비한다. 최소 한 달 이상 이 상태를 유지하다가 사용자 유입이 기준 범위 아래로 떨어진 것을 확인한 후 도메인과 서버를 반납해야 진짜 서비스가 끝난다. 론칭만큼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것이 클로징이다.  


책 <프로덕트 오너>를 읽은 것은 서비스를 종료한 지 약 1년이 지나서였다. 물론 프로덕트 오너가 해야 할 업무는 서비스 종료만이 아니다. 어쩌면 서비스 클로징은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나를 고용한 회사에서는 내게 서비스 종료 업무만 주진 않는다. 나라는 개인은 회사의 자원이므로 서비스 종료가 결정된 시점에 나 역시 즉시 다른 프로덕트에 투입됐다.  


이 책에는 프로덕트 오너의 다른 업무에 대해서도 잘 나와 있다. 서비스를 출시하고, 데이터를 보며 가설을 세우고,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의 일정을 관리하고,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업무 모두가 프로덕트 오너가 해야 할 일이다.


내가 경험한 프로덕트 오너는 매순간 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으로 인한 결과에 마땅히 책임을 지는 역할이다. 서비스 클로징이 프로덕트 오너가 내리는 결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귀한 경험이었고, 가장 무거운 책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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