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행전으로 배우는 반면교사
순박하지만 선한 양심을 가진 바보 캐릭터에 익숙해 있는 사람이 <아큐정전>을 보면 조금 어리둥절합니다. 늘 사람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바보 아큐가 언젠가는 약삭빠른 사람들을 골탕먹이리라 기대하지만 허무하게도 아큐는 정말 바보 같이 죽게 되지요. 우리나라의 전래동화 <바보 온달>이나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을 바보의 히어로 버전이라고 한다면, <아큐정전>은 바보의 비극 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큐는 왜 그런 허무한 비극을 맞게 되었을까요? 중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 중국 인민의 교사라 불리는 루쉰은 바보의 처참한 최후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요?
소설의 주인공 아큐가 사는 곳은 웨이짱이라는 마을입니다. 나이는 서른 살 쯤 됐고, 집이나 가족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로 토곡사라는 절간에 숨어 살지요. 다른 집에서 날품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데 돈이 생기면 노름을 하거나 술을 마십니다.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그는 온 동네 사람들에게서 멸시와 천대를 당합니다.
한 사람의 간략한 생애를 기록하는 형식(정전)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의 전반부는 아큐의 바보 행적을 서술합니다. 여기서 얻어 맞고 저기 가서 머리통이 깨지는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아큐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일자무식인 주제에 체면과 예절을 흉내내며 온갖 약은 꾀를 내 보지만 번번이 사람들에게 욕을 먹습니다.
그런데도 아큐가 밝고 쾌활한 생활 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아큐의 독특한 심리 전술 덕분입니다. 이른바 ‘정신 승리법’이라 불리는 아큐만의 비법이 있습니다. 얻어맞는 와중에도 자기 스스로를 설득해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일종의 자기 합리와 내지는 비굴한 변명으로,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자존심을 지키는 심리적 방어 전술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누가 주먹으로 때리면, “난 내 얼굴로 녀석의 주먹을 쳤어!” 하면서 씩 웃는 거죠. 정말 기발하네요. 바보라고 해야 할지, 창의적이라고 해야 할지.
작가는 ‘이 기록은 아큐의 생애를 기록한 역사 서술이다’라는 말로 소설을 시작합니다. 소설은 마치 아큐에 관해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이야기를 모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아큐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째서 하루 아침에 큰 돈을 벌었는지 자세한 설명이 없죠. 그냥 ‘어느 날 아큐가 어디에 나타났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엮어 갑니다. 오직 한 바보의 바보 같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만 이야기 할 뿐, 아큐가 살다가 죽었던 시대의 심각한 분위기에 대해 작가는 일부러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아큐정전>은 신해혁명(1911년)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장황한 설명 없이 세련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아큐의 삶과 죽음 자체가 어리석은 중국 군중들의 몰락을 의미하지요.
신해혁명은 중국의 전통 왕조(청)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혁명으로 불리지만 그 후에 다시 크고 작은 봉기와 군대의 분열, 수차례의 혁명이 반복되면서 중국 전체가 거대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거기다 일본 제국이 러·일전쟁(194~5)에서 승리한 후 노골적으로 중국을 침략했습니다. 작가 루쉰은 바로 그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루쉰의 아버지는 청 왕조의 하급 관리였으나 부정을 저지른 죄로 파면당한 후 죽습니다. 그때가 루쉰의 나이 13세, 부유했던 그의 집안은 하루아침에 몰락합니다. 그래도 배움을 끈을 놓지 않았던 루쉰은 스물한 살이 되던 해(1902)에 청 왕조의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처음에는 의사가 되려고 의학전문학교를 다녔으나 루쉰은 일본인 교수와 학생들 틈에서 중국인이 어떤 취급을 당하는가를 목격하게 됩니다.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일본인 교수는 가끔씩 수업 중에 환등기를 켜서 전쟁 상황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거친 흑백 화면 속에서 일본 군인이 중국인 첩자를 칼로 처형하는 장면이 나오자 일본 학생들은 환호했고 루쉰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루쉰을 더 분노하게 만든 것은 처형 장면을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는 화면 속의 중국인 군중들이었습니다. 무력하고 나약한 중국인들을 보면서 루쉰은 생각했습니다. ‘내 나라에 필요한 사람은 몸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정신을 치료하는 의사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환등기 사건’입니다. 그 사건 이후 루쉰은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소설가과 사상가, 혁명가의 길을 가게 됩니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루쉰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바보 아큐’는 어리석은 중국 군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루쉰은 가난하고 나약한 중국인들을 그저 불쌍히 여기는 고결한 지식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나라 사람들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사상가였고 중국을 일깨우고 가르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애국자였습니다. 허무한 바보의 이야기 <아큐정전>은 커다란 각성과 실천이 없다면 중국은 바보 천치처럼 세파에 휩쓸려 사라질 수도 있음을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소설은 혁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혁명을 부르짖던 중국 군중들을 향해, 정말 바뀌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당신들의 어리석음과 무지라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아큐는 유행가 가사를 읊조리는 식의 정신 승리법으로 자기 최면을 겁니다. 아큐는 여러 사람들의 상징으로 보입니다. 미래를 보지 못하고 당장의 안락과 즐거움만 생각하는 자들, 여기저기 휩쓸려다닐 뿐 삶의 목적도 의지도 없는 자들, 자기 이익을 위해 싸우는 소인배들이 바로 아큐입니다. 아큐의 허망한 죽음이 보여주는 것, 그것은 있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볼 줄 모르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최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