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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성근 Oct 26. 2021

강철과 칼의 지식-셜록 홈즈 시리즈

문학

문제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Sir Arthur Conan Doyle, 1859-1930)을 아시나요? 그는 그 자신의 이름보다 그가 창조해 낸 가상의 인물로 더 유명합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애든버러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을 개업했으나 찾아오는 환자가 적어 한가한 시간에 쓴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도일은 전세계에서 수입이 가장 많은 작가가 됩니다. 그 소설이 <셜록 홈즈 시리즈>입니다. 



뛰어난 지성과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홈즈가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전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이 셜록 홈즈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이 ‘더 가치 있는 글을 쓰겠다’며 작중 셜록 홈즈가 죽음에 이르는 결말로 소설을 끝냈을 때, 그의 집앞에는 셜록 홈즈를 애도하는 사람들이 갖다 바친 꽃다발로 넘쳐 나게 됩니다. 이 일로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코난, 네 마음을 잘 안다. 그런데 셜록은 왜 죽인 거냐?” 결국 코난 도일은 셜록을 부활시켜 다시 활약을 펼치게 합니다. 


셜록 홈즈의 매력에 빠져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이름하여 ‘셜로키언(Sherlockian)’이라 부릅니다. 그들은 셜록의 소지품을 수집하고( 그 유명한 파이프 담배와 돋보기, 그리고 망토) 셜록이 살았다던 베이커가 221b번지를 방문해 그를 기념합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셜록 홈즈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이어져 영화와 드라마로 끊임없이 재탄생하죠. 도대체 왜 사람들은 셜록 홈즈에 그토록 열광할까요? 



사립 탐정(consulting detective) 셜록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살펴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셜롬 홈즈는 범죄 수사에 과학적 기법을 총동원합니다. 요즘은 그러한 과학 수사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홈즈가 활약하던 19세기 말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장 보존이나 잠복 수사 같은 비교적 전통적인 수사 기법 외에 홈즈는 방대한 자료 수집, 증거 물질의 화학 실험과 분석, 토양 성분에 기초한 지질학적 특징 파악, 동식물의 생태학적 특징 활용, 피해 상황에 대한 물리학적 추론, 범인의 행동 패턴 분석(이른바 ‘프로파일링’ 기법) 등 정말 다양한 과학 수사 기법이 소설 속에 등장합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세계 각국에서 보편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지문 채취/감식 기법 역시 셜록 홈즈의 돋보이는 활약 중 하나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은 실제로 경찰의 범죄 수사에 여러 번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런던 경찰국에서는 1901년 수사 과정에 지문 채취를 공식적으로 포함시켰습니다. 과학과 합리적 추론을 통해 사악한 범죄자를 찾아내 정의를 실현하는 홈즈의 활약에 독자들은 열광했고 ‘셜록 홈즈’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과학 수사 외에도 셜록 홈즈는 다양한 전문 지식을 활용합니다. 실내에 걸린 초상화의 회화적 특징을 분석해 범죄자의 신원을 알아내는가 하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사건의 앞뒤 과정을 정확하게 추론합니다. 문학, 철학, 종교, 고고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가 홈즈의 추리 과정에 등장하지요. 


<셜록 홈즈 시리즈>는 단순한 범죄 수사 액션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는 방대한 지식이 담겨 있었고 그 지식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정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셜록 홈즈는 생명을 존중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돈과 이익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홈즈는 약자의 편에 서서 눈감아 주거나 위기에 처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증거를 감춥니다.  


이러한 셜록 홈즈의 이미지는 사람들이 열망하는 참된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배워서 무엇을 하느냐,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아는 것을 통해 어떻게 세계를 바꿀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셜록 홈즈는 낮게 깔린 음성으로 말합니다. “이 보게, 왓슨. 세상에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셜록 홈즈의 창조자 아서 코난 도일의 삶에는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이 있습니다. 과학과 합리적 추론으로 무장한 지식인의 모델을 만들어 낸 도일은 생애 막바지에 이르러 유령과 영혼의 존재를 탐구하는 심령술에 빠져 듭니다. 그는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무당들과 교류했고 진지하게 심령술을 변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아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소리입니다. 그의 아들 킹즐리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18년에 전사합니다. 


1930년 7월 7일 세상을 떠난 아서 코난 도일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강철처럼 진실하게. 칼날처럼 곧게.' 이 말은, 자신이 가진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셜록 홈즈의 말처럼 들리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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