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독짓는 늙은이

파멸하는 자의 깨지지 않는 영혼

by 송성근

어떻게 하면 인간을 파괴하고 무너뜨릴 수 있을까요? 핑거 스냅 한번으로 우주의 절반을 파괴했던 타노스의 계략은 막강한 우주의 힘(을 가진 스톤)이었습니다. 그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쓸데없는 생명’이 파괴되지요. 하지만 타노스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 있으니, 지구에 사는 인간의 정신, 곧 휴머니즘입니다. 아이언맨이 마지막에 보여 준 휴머니즘의 파워는 타노스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변수였죠. 가소로운 인간들이 끈질기게 발달시켜 온 휴머니즘의 실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여기 완전히 무너진 한 인간이 있습니다. 자신의 아내는 조수와 바람이 나서 도망갔습니다. 일곱 살 난 그의 아들은 배가 고파 웁니다. 아내를 원망해 봤자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그의 직업은 도공, 진흙으로 토기를 빚어 생계를 이어갑니다. 어떻게든 진흙을 주물러야 합니다. 독을 빚고 가마에 불을 때면 장에 내다 팔 옹기가 생깁니다. 그러면 두 계절은 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는 이미 노인입니다. 체력이 떨어진 그는 진흙을 주무르다가 몇 번이고 기절합니다. 옆집 할멈이 찾아와 아이를 다른 집에 맡기라고 부추깁니다. 할멈은 노인이 이미 무너졌다 생각하지요. 더 이상 무너뜨릴 몸도 정신도 남아 있지 않은 송 영감에게 이제 절대 고독이 그를 괴롭힙니다.


송 영감이 저도 모르게 애보고 안 죽는다, 안 죽는다, 했다. 그러나 송 영감은 또 속으로는, 지금 자기는 죽어가고 있다고 부르짖고 있었다.


처절하게 무너진 그의 처지를 보면, 이 소설이 발표된 1950년의 한국을 떠올리게 됩니다. 작가 황순원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며 무너진 자신의 조국을 어떻게든 살려 보려 했을 겁니다. 제국의 명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나온 지식인으로서, 그가 바라 본 한국은 역사에서 내동댕이쳐진 작고 초라한 나라였을 겁니다. 그나마 일제가 남겨 주고 간 산업 시설들은 가면을 바꿔 쓴 친일파의 손에 여전히 들어가 있고, 어디를 가나 굶주린 아이들이 발가벗은 채 ‘거랑질’을 하며 손을 내밉니다. “독을 지어 한 가마 채워 가지고 구워 내야 당장 자기네 부자가 살아갈” 수 있는 송 영감처럼, 가진 재주라도 부려야 하지만 거랑질밖에는 할 수 있는 게 도무지 없습니다. 미국 사람 만나 거랑질 하는 사람들, 소련 사람 만나 거랑질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넘칩니다.

작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너진 나라를 되살릴 길이 없어 보입니다. 해 봤자지, 무얼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작가는 ‘정말 이 영감이 이번 병으로 죽으려는가 보다 생각’하는 앵두나뭇집 할머니의 눈빛으로 제 나라를 봅니다. 더 이상 무너질 것이 없는데도,


송 영감은 일어났다가는 쓰러지고, 일어났다가는 쓰러지고 하면서도 독짓기를 그만두려고 하지는 않았다.


송 영감은 싸우고 있습니다. 무너지려는 자신과 싸웁니다. 떨리는 손으로 흙을 때리고 혼미해진 정신으로 버티며 그만두지 않지요. 하지만 앵두나뭇집 할머니의 판단이 옳습니다. 무너지고 죽은 것은 자라나는 생명을 품을 권리가 없습니다. 무너진 자의 유일한 권리는 ‘포기하는 것’입니다. 삶을 버리고 가진 것을 내어주며 일찌감치 종말을 준비해야 그나마 괜찮은 끝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고집만 부리지 말고 살아서 좋은 자리로 가는 걸 보아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습니까? 송 영감은 거래를 수락합니다. 자신의 죽음과 자라나는 생명을 맞바꾸기로 한 거죠. ‘송장 썩은 물’이 보증 수표입니다.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무너진 것에 집착하지 않을 테니까요. 무너진 것은 무너진 것이고, 아이는 어떻게든 살아갈 테니까요. 아이는 무너진 것의 최후를 제 눈으로 확인합니다. 저것 봐라. 벌써 송장 썩은 물이 나온다......


그러나 인간의 최후는 송장에서 나오는 썩은 물로써만 확인해선 안 됩니다. 그래도 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들이 다시 꿈틀대며 살아날 테니까요. 뜨거운 불을 이용하면 어떨까요? 그의 육체를 완전히 전소시켜 한줌의 재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불에 의하여 흙은 터지고, 몸안에 있는 물은 수증기가 되고, 육체는 재로 변할 겁니다. 사악한 악당 타노스라면 확실히 그 방법을 쓸 것 같습니다. 인간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인간의 흔적을 철저하게 지우기 위해 그는 ‘불의 방법’을 도모할 것입니다.

송 영감의 독들이 불 속에서 먼저 터져 나갑니다. 부자가 함께 날 수 있었던 두 계절의 꿈이 사라집니다. 왱손이의 독만 멀쩡하고 송 영감의 독들만 터집니다. 노쇠한 인생의 재주도 사라집니다. 송 영감은 이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 자신까지도 불속에서 사라집니다. 완전한 파괴입니다. 타노스 님, 축하드립니다. 인간을 완전히 무찌르셨군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뜨거운 불가마 속에 남은 것이 있습니다. 터져나간 독과 한줌의 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타노스가 얼굴을 구깁니다. 유난히도 섬세한 감각을 지닌 타노스가 묻습니다. 뜨거운 불속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이 이상한 기운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그것은, 휴머니즘 같습니다. ‘인간의 고결한 정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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