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적 적자생존의 파토스
한국 소설에서 보기 드문 수작으로 평가 받는 전광용의 <꺼삐딴 리>에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는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이 엿보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며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나오지요. 작가는 주인공 이인국 박사의 삶을 추적하며 해방기부터 전후 혼란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를 되돌아봅니다.
일제 강점기에 돈 많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병원을 운영하면서 부와 특권을 갖게 된 의사 이인국은 해방과 동시에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모두 상실합니다. ‘친일파, 민족 반역자’로 내몰려 죽을 위기에 처하지요. 하지만 그는 재빨리 변화의 흐름에 올라탑니다. 한반도를 점령해 들어 온 소련군, 미군에게 차례로 기대어 가며 전쟁과 전후 복구의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습니다.
이인국은 적응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입니다. 자신의 아이들을 소련으로 보내고 미국으로 보내면서, 다음 세대의 변화를 예측하고 적응을 준비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롭지는 않습니다. 소련으로 유학 보낸 아들은 생사를 알 길이 없고, 미국으로 유학 간 딸아이는 ‘외인’과 결혼하겠다고 통보합니다. 그는 ‘잡종의 유전 법칙’을 따라 자신이 안게 될 ‘징그러운 흰둥이 손자’를 생각하며 머리를 내젓습니다. 비록 그 결혼이 탐탁치 않치만 이인국은 그러한 변화를 재빨리 받아들입니다. ‘때가 때인 만큼… 미국 혼반을 맺어 두는 것도 그리 해로울 건 없지 않나’ 하고 스스로를 타이릅니다.
이인국의 뛰어난 적응 능력이야말로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다’)의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요? 급변하는 환경에서 자신의 모습을 신속히 바꾸어 위장하는 도마뱀처럼, 이인국의 과감한 변신은 그의 생존력을 극대화 해 줍니다. 그렇다면 이인국 박사를 교활한 기회주의자로 보는 것은 부당합니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바에야 그 물 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하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생명을 보전하고자 하는 욕구를 기회주의라 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강자가 살아남고 약자가 몰락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 아닙니까? 강자, 적자의 생존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작가는 이인국 박사의 삶을 추적하며 독자에게 대답하기 어려운 도발적 질문을 던집니다. 작가는 처음에 이 박사의 선택과 행동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일은 욕 들어도 싸지요. 하지만 그 후, 가령, 총살 위험에서 살아남고, 아들과 딸을 소련과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최선을 다해 병원을 운영해 온 이인국의 삶에 대해서는, 작가 역시 침묵합니다. 고려 청자를 빼돌리기까지 하지만 작가는 미국인의 입을 통해 이인국에게 적절한 보상을 줍니다. ‘역사는 짧지만, 미국은 지상 낙토’입니다.
1962년 당시 이 소설을 읽었을 독자들은 겉으로는 이인국을 비난하면서도 내심 속으로는 부러워했을 겁니다. 세상에, 그 당시에 누가 미국을 국무부 초청으로 갈 수 있었겠습니까. 자신이 이인국이었다 해도, 고려 청자가 아니라 임금님의 황금 옥세였다 해도, 할 수만 있다면 팔아서 미국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작가 전광용은 이인국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 냉담하게 그의 생존과 성공의 일대기를 그립니다. 이인국은 얼마나 눈물 겨운 삶을 살았나요? 전쟁통에, 그 난리통에 자기 가족을 지키고 아이들을 해외 유학 보내면서 살아왔다면 얼마나 눈부신 인생인가요.
작가는 이인국 박사에 대한 부러움을 독자의 마음 속에 잔뜩 부풀려 놓고서 독자에게 묻습니다. 정말 당신은 이인국의 눈부신 성공이 부러운가? 그를 부러워하는 당신의 마음에는 정말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는가? 단지 이기고 생존했다면(그리고 성공했다면) 그의 삶의 방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가? 결과가 풍요롭다면 그 과정에서 저질렀던 파렴치한 행동이 모두 잊혀질 수 있는가? 이인국은, 그리고 역사의 격변기를 거쳐 살아남은 당신에게는 정말 역사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진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혼란을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적응과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기를 강요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 것을, 살아남기만 한다면, 그래서 허울 좋은 성공을 이룰 수만 있다면 당신이 살아오면서 저질렀던 내밀한 부끄러움 쯤이야 얼마든지 감출 수 있으니 양심이나 도덕 같은 것은 신경쓰지 말기를 은근히 부추깁니다. 이인국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처럼 살지 못한 당신이 바보 아닌가, 일본어를 못 하고, 노서아어도 못 하고, 스탠더드 잉글리시도 못 하는 당신이 멍추 아닌가……. 흥, 난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어. ‘혁명이 일겠으면 일구,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구, 아직 내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어. 잘 보라고. 나보다 더 날뛰던 놈들도 있어. 나쯤이야…….”
그래도 부끄러움과 양심을 마음 속에 품고 살겠다고 다짐하는 오늘날의 ‘멍추들’에게 <꺼삐딴 리>의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