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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성근 May 18. 2020

슈퍼맨의 빨간 망토

아빠 인문학

슈퍼맨이라는 인물이 있다. 크립톤 행성 출신인데 지구에 온 후로 슈퍼 파워를 갖게 된 사연이 조금 복잡하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빨간 망토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슈퍼맨의 기운찬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빨간 보자기를 어깨에 맨 채 담벼락에서 점프했던가, 그 얘기를 하려 한다. 


당연히 아빠도 슈퍼맨의 빨간 망토를 가진 적이 있다. 정확히는 자주색 홍삼 보자기였던 것 같다. 사각형 보자기의 두 꼭지점을 말아 목에 묶고 약 2미터 담장 위에서 뛰어내렸던 때가 일곱인가 여덟 살 때였다. 발목을 삐고 팔꿈치가 심하게 까졌다. 내가 하늘을 날 거라 상상했던 건 아니다. 나는 다만 중력이라는 보편적 힘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떨어질 때 중력이라는 이상한 힘이 작동해 가속도가 붙는다는 걸, 그 시절의 아빠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니? 


우주 만물은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다더구나. 17세기엔가, 갈릴레오가 답답할 만큼 끈기 있는 실험으로 관성이 있다는 걸 증명한 후로 그런 힘이 존재한다는 게 거의 확실히 알려졌다고 하지. 아이작 뉴턴이 포물선 운동에 대한 미적분학적 분석을 통해 중력의 작동 방식을 확실히 알려줬는데……, 그래서 뭐?


만유인력이 온 우주에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해하고도 우리는 왜 놀라지 않을까? 우리가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일까? 그러면 과학자들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접할 때마다 흥분해서 팔딱팔딱 뛰고 중력가속도의 증감의 비율의 비율을 계산할 때마다 짜릿한 경외감에 휩싸일까? 나는 과학자가 아니지만 과학자가 그런 촌스런 감상주의자가 아니라는 건 잘 안다. 


중력은 느낄 수 있지만 직접 볼 수는 없다. 중력에 영향을 받는 물체를 보고서야 우리는 중력이 미치는 힘의 크기와 범위를 짐작한다. 중력에 의해 발생하는 큰 힘과 충격의 파장이 전해질 때, 비로소 중력을 느낀다. 중력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몇 가지 사례로 만나 보자.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2014년. Shutterstock


중력이 있다는 걸 아주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운동 선수들이다. ‘트리플 악쎌’이라는, 고급 세단의 첨단 변속기 이름 같은 재주를 부리는 김연아 선수를 보고서 온 국민이 감탄했던 적이 있다. 마찰력이 사라진 빙판 위에서 스무 살의 그녀는 오직 자기 근육의 힘으로만 중력을 완벽히 통제했다. 빙판 위에서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회전할 때, 그녀는 중력과 싸우거나 조화를 이루었다. 초보자들은 중력을 투쟁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만, 선수들은 중력에 자신의 몸을 맡길 줄 알지. 몸에서 힘을 빼는 순간과 더하는 순간을 정확히 통제한 결과가 바로 ‘트리플 악쎌’이다. 


아빠도 가끔 고속도로에서 ‘악쎌 묘기’를 부리곤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미친 짓이다. 고작 발목 근육 몇 개를 까딱여 비행기가 이륙하는 속도로 땅바닥을 질주하던 청년 시절이 떠오른다. 오만한 자세로 앉아 손가락으로 핸들을 잡고서 중력을 내 맘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었지. 그 숱한 파멸의 찰나를 지나 너를 만나게 된 건 순전히 신의 축복 덕분인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중력을 이용해 대단히 불행한, 해서는 안 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곤 한다. 높은 곳에 서서 자신의 몸을 날리는 것이다. 빨간 망토도 없이……. 이런 식으로 중력에 몸을 맡기면 그 결과는 너무도 파괴적이다. 중력이 모든 걸 끝장 낼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니 너와 나는 이 우주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모든 걸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 너는 따지고 싶을 것이다. 


“왜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해? 모두가 그렇게 한다고 반드시 옳은 건 아니잖아!”


그렇다. 모두가 그렇게 한다고 반드시 옳은 건 아니다. 다만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을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모두가 따르는 관성을 거스르는 운동을 하려면 그보다 몇 배의 힘이 필요한지 계산해 봐야 한다. 보이지 않는 힘에 맞서 싸울 때도 있어야겠지만 우선 그 힘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래도……, 어깨에 걸친 빨간 망토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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