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 Oct 19. 2023

보여주고 싶은 소주 종이컵

2023.03.31.(2)

1.  집에 도착했는데 회색 스타렉스 한대가 서있었다. 고모들이 와있었고, 엄마와 민성이도 마당에 나와있었다. 고모가 '이 안에 느 아빠 있다'라고 알려준다. 엄마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너 올 때까지는 산다고 했는데'라고 말하며 또 운다. 옆에 이미 울고 난 것 같은 동생이 붉게 눈물진 얼굴로 서있었다.

나는 동생에게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말했다.


  바로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아빠는 생전에 장례식장도 직접 골라뒀다. 아빠는 장례식에 당신의 친구들은 부르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자신의 친구들은 이미 생전에 다 만났으며, 충분히 받았다고. 장례식장까지 와서 자신에게 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빠에게 장례식은 아빠가 아닌 남은 식구들을 위한 예식이었다. 엄마와 세 자식들. 그런데 자식들이 다들 멀리서 사니, 자식들의 지인들이 오기 편한 곳으로, 동시에 아빠의 친구가 운영하는 장례식장으로 골라둔 것이다.

  엄마는 동생과 고모 둘을 모신 차를 직접 운전했다. 신랑과 나는 따로 그 뒤를 따라갔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엄마대신 주차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니 서류 작업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아빠의 인적사항부터 몇 시에 돌아가셨는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질문에 답한다. 동생화 함께 화장터 시간을 확인하고, 장례식장 몇 층 몇 호를 사용할지 정하고, 어떤 국 어떤 반찬을 놓을지 정한다.


  몇 시간 전에 아빠가 죽었는데, 북엇국을 놓을지, 육개장을 놓을지 고민하고, 불필요한 반찬이 포함되어있지 않은지 본다. 버섯볶음은 빼기로 한다.


2.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사망진단서가 필요했다. 아빠는 집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경찰이 중간에 껴있었다. 잘못하면 유족들도 경찰조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행인 일인지, 집에만 계시다가 얼마 전 응급실,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 병동에 입원했었고, 아빠가 의사를 강력하게 설득하여 집에 돌아온 상황이라 별도의 증인 조사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의사가 직접 와서 병사 처리에 대한 동의 여부 등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사망진단서를 출력해 줬다. 그 종이를 받기 위해서 25만 원을 바로 입금해야 했다. 돈이 오가기 시작한다. 우리 집에서 장남을 담당하고 있는 언니도 없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3.  아빠의 장례식장은 4층이었다. 한 층에 2개 실이 배치되어 있는데 401호는 이미 사람들도 북적북적했다. 문제는 두 실이 겨우 파티션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매우 시끄럽다는 점이었다. 이건 너무 시장통 같다는 마음에 잠시 확정을 보류하고, 동생과 한 층을 무두 쓰는 특실과, 작지만 벽으로 나뉜 2층 장례식장을 오가며 고민한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언니의 빈자리가 크다. 주변에서 동생과 나의 결정을 보고 있는 어른들(소식을 듣고 온 엄마 친구, 친척들)은 그 의견도 다양하다. 왜 특실 사용을 망설이는지 못마땅해하는 눈치도 보이고, 작은 실도 충분하다는 분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동생과 나의 마음. 다행히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정도의 나이. 우리는 둘이서 여러모로 고민을 해본다. 특실을 사용하기엔 우리 직장이 모두 전주가 아니라 그렇게 많은 인원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렇게 했을 때 중간에 파티션 설치도 불가능한 이 커다란 특실은 오히려 너무 휑해 보일 것 같다는 점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다. 작은 실로도 충분할 것 같았지만, 작은 실은 조문하는 공간과 식사공간이 낮은 장으로만 나뉘어있다. 아무래도 402호가 나은 것 같다는 결론.


장소를 정하 고나니 이번엔 더 다양한 것들을 정해야 했다. 수의, 유골함, 꽃 등등..

결혼식 준비할 때가 생각났다. 다만 이것은 더 많은 절차가 있고 더 짧은 시간에 결정해야 한다는 것.


  다행히 이 타이밍에 언니가 왔다. 언니와 형부가 온 것만으로도 뭔가 마음이 놓인다.

  언니와 형부는 바로 각자 회사의 상조회사에 연락을 해둔 상태다. 언니와 형부와 동생 세명 모두 회사의 상조서비스가 가능하여 여기저기서 지원되는 것들이 있다. 좋은 직장이라는 것이 이럴 때 필요한가. 그래서 어른들이 그렇게 대기업을 찾는가 보다.

  상조회사에서 금방 장례식장으로 와서 선택을 도와준다. 지원이 되는 것은 최대한 지원을 받는다. 언니, 형부, 동생 각각 중복되지 않는 것들을 선택한다. 장례지도사분은 선택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준다. 다만 조금 좋은 것을 하길 잠시 권해볼 푼다. 결혼식에 가장 싼 기본 드레스나, 부케를 고를 때는 들지 않았던 기분이 든다. '불효'같은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아빠를 너무 잘 안다. 쓸데없는데 돈 쓰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들과 사위들까지 모두 다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허례허식에는 욕심내지 않기로 한다.


4.  결혼보다 '장례식장'에서 자식들의 직업이 드러난다.

  각 회사에서 보내온 조기는 얼른 아빠의 제단 양쪽에 배치한다. 각 회사의 상조회사에서 보내 준 일회용기들을  테이블에 골고루 배치한다. 조그만 소주컵에 박힌 조그만 '검찰'마크를 보며 언니에게 말한다. '아빠가 이거 보면 되게 좋아했을 텐데' 아빠가 좋아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들과 사위가 번듯한 회사에 다닌다는 것, 딸이 검찰에 있다는 것, 그래서 언니가 검찰에서 받아오는 검찰마크가 찍힌 물건들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두기를 좋아했다. 자영업을 하는 우리 신랑이 꺼내둘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도 교육청이나 학교마크가 찍힌 일회용품이 없다는 것이 뭔가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크고 작은, 멀고 가까운 누군가의 장례를 겪어본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번듯한'회사를 권하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테이블마다 언니, 형부, 동생 회사의 일회용품이 마치 자식들의 전리품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 나는 괜히 자랑스럽고 좋았다. 아빠는 더 그렇겠지. 직접 봤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허튼 생각이 잠시 들뿐이다.

"아빠가 이 종이컵(소주용) 봤으면 귀여워했을 것 같지 않아?"

직접 보여주고 싶은 게 종이컵이다.






이전 13화 마음의 소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