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 Oct 20. 2023

미워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일

2023.04.02.(2)

 1. 화장터 대기실에는 엄마, 언니, 그리고 아빠의 친구분이 있었다. 그리고 아빠의 지인, 어떤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엄마는 아빠가 그 아픈 와중에도 그 사람을 기다렸다고 했다. 혼자서 옆으로 돌아눕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도, 아빠는 그 교수님이 찾아올까 봐 바지를 챙겨 입고 있었다고 한다. 

  몇 해 전 사이가 틀어져 연락을 안 하고 지냈지만, 원래 아주 가깝게 지내던 교수였다. 아빠는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교수에게 먼저 전화해서 사과를 했다고 한다. 전화로 한 사과지만 먼저 사과를 했으니 아빠가 이렇게 아픈 상황이니 교수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아빠는 원래 잘 사과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화가 나고 슬펐다.


 하지만 그는 끝내 아빠 살아생전에 집에 찾아오기는커녕 전화 한 통 없이 장례식장에나 나타났다. 


  그다음 더 화가 난 것은 그 교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몇 푼 되지도 않는 월급 받는 강사 일을 아빠에게 준 것으로 생색내며 그렇게 아빠를 끌고 다녔다고, 전주도 아닌 대전 자기 집 리모델링 공사에도 끌고 다녔으니 오지랖 넓은 아빠 성정에 얼마나 자기 일처럼 도왔을지는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심지어 아빠 명의로 지원금을 타서 쓰면서. 엄마가 그만하라고 하나 '얼마 드리면 되냐'는 개소리나 한 작자. 차라리 좀 좋은 사람을 기다리지, 좀 좋은 사람한테 사과하지, 뭐 잘못이라도 좀 대단하게 하지. 슬픔은 그 교수에 대한 화로 번졌다. 


  아빠가 그렇게 아픈 와중에도 누군가를 기다렸을 생각을 하니 화가 나고 안쓰럽고 가여웠다. 

장례가 끝나고도 아빠의 아팠던 모습보다 아빠가 그 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기 위해 바지도 추려 입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보지 않은 장면은 더 선명하고 드라마틱해서,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화가 나고 슬퍼졌다. 


  화가 난 것은 우리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더 많이 울었다. 나는 그 교수의 얼굴도 몰랐는데 알고 있던 언니는 그 교수가 장례식장에 와서 보인 행태 때문에 더 기가 막혀했다. 혼자 온 그는 챙겨주는 이가 없어 머쓱했는지, 다른 손님을 맞고 있는 언니를 오라고 불렀다고 한다. 불러다가 아빠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다던가, 고마웠다던가, 최소한 지금이라도 미안한 기색이라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언니에게 '너 지금 몇 급이지?'라고 물었다고 한다. 같은 직무에 있는 자신의 아들과 비교해 보려는 것이었다. 다행히 언니의 직급이 더 높았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아빠를 힘들게 하고, 아빠가 기다렸던 인간이라고 듣더니 언니는 분노했다. 

  언니는 그런 감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그 접점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 그런 언니가 화를 내며 그 대학에 쫓아가서 최소한 부의금이라도 돌려주자고 말한다. 



2. 세상에서 가장 미워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빠다. 제일 많이 미워하고, 제일 많이 싸웠던 사람. 마치 오래된 영화의 클리셰처럼, 악역인 사람이 악역으로만 남는다면 나는 지금 마음이 더 편했을까. 

    

  미워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지만, 엄마는 자주 아빠에 대해서 얘기해 줬다. 

 '느네 아빠같이 열심히 사는 사람도 없어. 어디 놀러도 안 가지, 더워도 추워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전에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여름의 한가운데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힘들다고 투정을 부렸다. (한 두 번이 아니겠지) 엄마는 이번엔 위로보다는 '느 아빠는 한 시간만 밖에서 일하고 와도 윗옷을 짜면 땀이 뚝뚝 떨어져'라고만 답했다. 그렇게 투정을 부리던 나의 모습도, 임용시험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이제는 가물가물한데 아빠의 땀에 젖은 윗옷은 마치 본 장면처럼 기억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세상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남들에게는 뭐 하나라도 더 주려고 애쓰던 사람이다. 가끔은 가족보다 밖에 나가서 더 그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우리 가족 외에는 누구도 아빠에 대해 나쁘게 말해서도, 나쁘게 대해서도 안된다. 용납할 수 없다. 언니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빠는 늘 자신이 흑백논리주의자라고 했다.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했다. 당신의 딸로 태어난 이상 자신의 논리에 맞춰 살라고 했다. 하지만 흑백논리주의자의 딸은 세상 누구보다 '회색'의 영역을 잘 이해하는 인간이 되었다. 



누구든 나쁠 수 있으나 동시에 좋은 사람일 수 있으며, 

미워하는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아빠를 사랑하듯이






이전 17화 장례식 후 소풍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