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홀릭 Oct 23. 2023

제왕절개 후기 1일 차

수술 생생 후기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나니, 정말 이 경험들을 잘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생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말 잊지 못할 순간들인 만큼 최대한 생생하게 기록해서, 나 스스로에게도 유의미한 아카이브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10월 17일(화) 수술 당일/


드디어 수술날이 되었다.



평소에 덤덤하던 남편도 눈을 뜨자마자 나에게 떨린다고 말했다.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엄청 떨렸는데 이 날은 오히려 덤덤했다. 극도로 긴장해서 현실감이 없었던 것 같다.



양가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전화를 드리고 짐가방을 챙겨서 8시 50분까지 병원에 도착을 했다.


2층에서 수술 후 붙일 매디터치를 구매했다. 나는 페인부스터, 무통주사도 다 하기로 했지만 네오덤실은 선택하지 않았다.


원래 모든지 다 하자는 주의인데 네오덤실은 가격대비 효과를 확실히 잘 모르겠어서 하지 않았다.


3층에서 수술 수속을 밟았다. 수속을 밟으며 병실을 선택하는데 나는 1인실A에 들어가기로 했다.


다인실은 보험 적용이 되어 매우 저렴하지만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매우 잠귀가 밝음)


수속을 끝내고 5층 수술센터에 갔다.



남편은 밖에서 기다리고, 나 혼자 들어가서 수술 전 검사(태동검사, 항생제 검사 등)를 진행했다.


항생제 검사가 아프다던데, 나는 별로 아프지 않았고 오히려 수술용 대바늘을 찌를 때 아파서 깜짝 놀랐다. (엄청 두꺼움 ㅠㅠ)


다양한 검사가 끝나니 남편이 검사실에 들어왔다.


남편이 오니 떨렸던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남편이랑 이야기를 10분(?)도 안 했는데 갑자기 수술실로 이동한다고 했다. ㅠㅠㅠㅠ


정말 갑작스럽게 휠체어를 탄 채 남편이랑 인사를 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작된 제왕절개 수술!!!


수술대에 올라가서 누워야 했는데 몸이 무거워서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뒤뚱거리면서 올라간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척추 마취를 위해 몸을 새우처럼 구부렸다. 엄청나게 긴장이 되었다.


등이 서늘하고 차가운 기운이 들던 차에 마취 전문의가 와서 척추 마취가 시작되었다.


나는 TV에서 보던 항암치료 같은 것을 생각해서 엄청 큰 주사를 한방 놓고 끝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작은 바늘을 두세 군데(?) 꽂고 마취액이 여러 번 들어갔다.


예상보다 아프지는 않았고 불쾌한 기분과 심각한 다리 저림이 느껴졌다.


나는 이 저린 느낌이 정말 싫었다.


다리를 마구 펴고 싶은데 움직이면 마취가 깰 거 같아서 시도 조차 할 수 없었다.


또한, 만약 움직이려 시도했는데 움직일 수 없으면 패닉이 될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이 저린 느낌이 수술 내내 계속 이어졌다.


그 느낌이 싫어서 결국 몸을 살짝 움직였는데(어디를 움직였는지는 기억이 안 남) 의사 선생님이 지금 칼이 들어가고 있다고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극도로 긴장이 되었다.



내가 너무 긴장을 하니까 마취 선생님과 집도의 선생님이 그냥 지금 수면에 들어가라고 권유를 하셨다.


간호사 선생님도 잠에 들 것을 권유하셨다.


근데 나는 이왕 시작한 것 아이를 꼭 보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싫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약간 까다로운 환자였던 걸까 ㅠㅠ


겁 많은 내 성격을 아는 남편은 의사 선생님 괴롭히지 말고 ㅋㅋ처음부터 그냥 자라고 했었는데 ㅠㅠ


근데 결과적으로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자세한 건 다음에!)



내가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지 간호사 선생님이 원하는 노래가 있으면 틀어준다고 했다.


난 파헬벨의 캐논을 틀어달라고 했다.


(참고로 내 인생곡임.

중고등생 내내 등하굣길 및 자습 시간에 들었고, 고시생 시절도, 결혼식 입장곡도, 태교 기간에도 맨날 들었을 정도로 애정하는 곡이다.)


좋은 버전의 캐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캐논의 도입부를 듣는 순간 진짜 마법처럼 긴장이 풀어졌다.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에 임하게 되었다.


(거기 있던 간호사 선생님도 편안해진 나를 느낄 정도였다.)


몇 분 후, 캐논이 두세 번 정도 반복 되었을 무렵에 의사 선생님이 "아기 머리 보여요"라고 말을 하셨다.


그리고는 간호사에게 배를 눌러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불편하실 거예요"라고 말하더니 배를 눌렀다.


몸이 약간 흔들렸지만 아무 느낌이 나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났을 무렵,


캐논 음악 소리 위로 희미하게 아기의 울음이 들렸다.


매미처럼 아이가 앵앵하고 울어댔다.


점차 아이의 소리가 커져서 캐논 음악 보다 아이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두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간호사가 '남아 ~시 ~분에 ~kg으로 출생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간호사가 말했던 수치 들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눈물을 흘리니 간호사가 눈물을 닦아줬다.


그리고 아기의 얼굴을 보여줬다.


“튼튼아! 튼튼아!” 아기는 내가 태명을 불러도 계속 앵앵 울었다.


(태담을 별로 안 해서 내 목소리를 기억 못 하는가...?ㅠㅠ)


아기의 얼굴을 보는데 정말 신기했다.


"얘가 내 배 안에 있었다고?" "네가 그렇게 배안에서 꼼지락 거리던 거였구나!"


아기와 짧게 인사를 하고 수면마취가 들어간다는 소리와 함께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영화에서 보던 바이럴 소리가 들렸다. 회복실이었다.


내가 깨어나니 간호사는 간단한 체크를 하고 병실에 연락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에 들어왔다.


병실에는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수고했고 사랑한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척추 마취를 해서 머리를 들지도 못했고, 내 배를 모래주머니와 복대가 짓누르고 있었기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꼼짝할 수 없이 누워있었다.


남편은 우리 튼튼이가 3.3kg로 태어났다고 했다.


불과 3일 전 마지막 검사에서 아기 머리가 3주나 작다해서 소두증 같은 것을 엄청 걱정했었는데,


(근데 진짜 나는 엄청 심각했음. ㅠㅠ 성장 발달 어플 같은데 아기 수치를 넣어보면 자꾸 머리 크기가 하위 5%로 작게 나와서 엄청 무서웠음)


내 걱정과는 다른 건강한 아이가 태어난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아이를 보고 나서 아이 머리가 작다는 생각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순간 드는 생각은 '그럼 머리가 크다는 애들은 얼마나 큰 것인가?' '아기들은 이렇게나 대두인 것인가?' 등등이었다.


실제로 지금도 아기를 볼 때마다 머리가 작기는커녕 커 보이기까지 하는데, 대체 머리가 몇 주나 큰 아기들은 얼마나 큰지 진짜 인간적인 단순 호기심으로 궁금하긴 하다.


아무튼 출산을 하고 남편이 찍어준 튼튼이 사진을 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이전 16화 임신 후기(~38주, 그리고 출산 전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