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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홀릭 Oct 16. 2023

임신 후기(~38주, 그리고 출산 전날)

드디어 엄마가 된다.

1.  38주가 되면서부터 하루하루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정확히 39주 0일에 제왕절개 수술이 잡혀있는 나는, 38주가 되면서부터 매일 눈을 뜰 때마다 한자리 숫자로 다가온 출산의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현실감이 전혀 없고 진짜 멍~하게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며칠 뒤에 아기를 만난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출산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큰 것 같다. 아기에게는 세상의 전부가 엄마인 나일 텐데, 나는 부족한 엄마인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육아 유튜브를 보고 육아 책을 봤다. 도움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안 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자기 암시를 했다.



엄마가 되는 것이 처음이라 덜컥 겁이 나고 모든 게 낯설다.


나, 잘할 수 있겠지?





2. 38주 4일 (D-3)


출산 전 마지막으로 남편과 산부인과에 갔다.



가기 전에 미리 받은 제왕 절개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남편은 보호자란에 서명을 했다. 마지막 외래 진료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병원에 가니, 입원 전에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오랜만에 PCR 검사를 받았다. PCR은 여전히 아팠다.



검사를 받고, 출산 전 마지막으로 튼튼이의 초음파를 보았다.



예전에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았던 튼튼이는, 이제 완벽히 인간의 형태를 띠고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100g도 안되던 아이는 어느덧 3kg이 넘었다. ‘이제 정말 나올 때가 되었구나!’ 실감이 되었다.



앞으로는 매우 힘들테니 마지막 주말을 잘 즐기라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과 함께 미지의 세계(?)가 구체적 현실로 펼쳐지는 것이 실감이 났다.



집에 와서 남편과 아기방을 마지막으로 청소하고, 카시트를 점검하고 브레짜를 세척했다.



두근두근하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





3. 38주 5일 (D-2)


가만히 있다가도 이틀 뒤에 아기를 만난다니 너무 떨렸다.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면 가기 힘들다는, 다찌석으로 되어있는 협소한 초밥집에 갔다.







초밥은 진짜 맛있었다!


“우리 당분간은 이런데 둘이서 오기 힘들겠지?”라며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집에 있으면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불안해져서 즉흥적으로 집 근처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갔다.

별 기대 없이 시간 때우기용으로 갔는데, 예상보다 볼게 많아서 좋았다.



마음을 다잡고 집에 와서 아기를 맞이할 정리를 했다.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할 것이 많았다.



어른이 집에 오면 우리가 쓰던 것을 그대로 쓰면 되기에 딱히 준비를 할 것이 없지만, 아기 맞이는 패러다임의 변혁 수준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인간에게 필요한 의식주를 A부터 Z까지 새롭게 준비하는 것과 같다. 여전히 준비가 부족하지만 나머지는 겪어보고 그때그때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남편과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의 벤치에 앉아서 바람을 쐬었다.


바람이 꽤 찼다.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2023년 가을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4. 38주 6일 (D-1)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보다 내가 먼저 눈을 떴다.



내일 이 순간에는 수술을 준비할 생각을 하니 갑자기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생각을 안 하려면 몸을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 이른 아침부터 집안을 휘젓고 다녔다.



마지막으로 튼튼이 방을 점검하고, 오랫동안 집을 비울 것이기에 밀린 집안일을 다 끝냈다.



제왕 절개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 전에도 금식을 해야 하지만, 수술 후에도 한동안 금식을 유지해야 한다.



최후의 만찬(?)을 즐기라는 남편의 조언대로 내가 좋아하는 라자냐를 먹으려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ㅠㅠ 오늘 내가 가려던 곳과 그나마 괜찮은 곳들이 모두 휴무였다.



꿩 대신 닭이라고, 오랜만에 과카몰리를 포장했다.



마침 과카몰리를 먹을 때 연락 온 친구가 무슨 과카몰리냐며 고기나 이런 걸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뭐라 했는데 나에겐 고기보다 과카몰리가 더 희귀템으로 느껴졌다. 조리원에 가면 고기반찬은 꽤 먹을 것 같기 때문이다.




먹다 보니 배가 불러졌는데 평소와 다르게 억지로 다 먹었다. 먹고 있으면 잡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오늘을 포함해서 최근 며칠 동안, 나를 생각해 주는 많은 이들의 연락을 받았다. 내일 내가 출산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고 연락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그 자체가 참 감사할 뿐이다.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서, 내일 무탈하게 건강한 아이를 맞이해야겠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많이 떨리고 설레기도 하면서, 엄청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내가 엄마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세상에 불러온 사람인만큼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탈하게 출산하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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