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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홀릭 Oct 24. 2023

제왕절개 수술 1일 차 2

모든 게 갑작스러웠다.


수술이 끝나고 누워있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도 움직이기 힘들고 (척추 마취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들어서도 안됨) 그냥 다리만 까딱까딱 움직여야 하는데 개복 수술인 만큼, 통증으로 인해 다리를 드는 것도 어려웠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다리 움직이는 연습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축하 연락 속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관심은 '오로 패드'에 있었다. 출산을 하고 나면 모든 산모는 오로를 경험하게 된다.

아기를 품고 있던 배 안의 모든 것들이 혈액이 되어 배출되는 것인데, 수술을 해서 패드를 내가 스스로 갈 수가 없기에 보호자나 간호사가 패드를 갈아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수술 전부터, 수술보다 '오로 패드 가는 것'이 더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남편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모습까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내 기준에서는 존엄성의 상실과 같았다.



내가 이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말했을 때, 고맙게도 남편은 '사랑하는 사이에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거지?'라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의 입장이고 ㅠㅠ 나는 진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심지어 선글라스를 챙겨 왔다 ㅋㅋ

남편이 선글라스를 쓰고 패드를 갈아주면 조금이나마 혈흔을 덜 생생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 ㅋㅋ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5시 20분 즈음 왠지 패드를 갈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으로 패드를 교체하는 것이라 안 그래도 걱정이 되던 차여서, 남편에게 간호사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남편이 간호사를 부르러 간 사이에 병실로 전화가 왔다.

나는 누워있기에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전화벨이 정말 이상하리만큼 계속 울렸다.

웬만하면 끊었다가 다시 연락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계속 전화벨이 울렸다.

뭔가 이상했다.



간호사와 함께 병실로 들어온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잠시 내려가게 되었다.

난 그때만 해도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남편이 굳은 표정으로 올라왔다.

나에게 "놀라지 말고 잘 들어."라며 운을 뗐다.

아기가 2시 즈음 호흡이 이상해서 신생아 실에서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지금은 괜찮아졌으나 5시 50분에 엠뷸런스를 타고 대학병원 NICU(신생아 중환자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그 엠뷸런스에 동행할 것이라고 했다.



정말 이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너무 무서웠다. 눈물이 났다.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 없는 상태로 "너무 무서워"라며 계속 울었다.

담담하던 남편의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나도 무서워."라고 남편이 말했다.



남편은 다행히 아이의 상태가 지금은 좋다고 했다. 그래도 병원 측에서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무조건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남편이 나에게 무언가를 혹시나 숨기는 건 아닌가 싶어서 계속 "사실대로 말하는 것 맞지?"라고 재차 질문했다.



그리고 남편은 엠뷸런스를 타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텅 빈 병실에 혼자 우두커니 누워있었다.

눈물이 마구 차올랐다.

모든 것이 거짓말 같고 영화 같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그냥 다 속상했다.



진정을 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도 많이 놀라셨지만, 별 일 아닐 것이라고 날 위로해 줬다.

1분이 1시간 같았다.



한참이 흐르고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다행히 아이가 엠뷸런스를 타고 갈 때도 괜찮았지만 검사를 위해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태어난 지 몇 시간밖에 안된 나의 아기는 코로나검사랑 노로바이러스 검사를 받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는 보호자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남편도 아이를 병원에 두고 돌아와야만 했다.



원래는 중환자실에서 절대 촬영이 불가하지만, 내가 너무 걱정을 한다고 부탁을 해서 남편이 찍어 온 사진 속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튼튼이가 콧줄 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사진을 보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정말 펑펑 울었다.

제발 아이가 무사하기를 기도하고 기도했다.



진짜 감사하게도 간호사 선생님들은 남편이 병원에 가 있는 동안, 내 패드도 갈아주시고 정말 성심성의껏 나를 돌봐주셨다.

정말 감사할 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인가.... 남편이 밖에 오래 있었기에 남편은 오로 패드를 많이 갈아줄 수 없었다.)



남편이 돌아왔고, 남편은 간호사와 이야기를 했는데 아기의 예후가 좋을 것 같다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아기는 일과성빈호흡증이라는 일시적인 증상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검색을 해보니 아이들에게 정말 자주 일어나는 증상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니큐에 들어가면 아이는 최소 1주는 나오지 못하게 되니, 병원에 있는 내내 그리고 조리원에 가서까지 며칠은 아이를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그날 저녁 시간이 흘러갔던 것 같다.



이것도 슬프고 괴로운데 심지어 새벽 내내 간지러워서 잠도 잘 수 없었다.

처음에는 많이 누워있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얼굴도 간지럽고 온몸이 다 간지럽고 너무 이상했다. (요새 빈대 이슈도 많다 보니 진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 알고 보니 무통주사 부작용이었다.



남편 표현에 의하면 온몸을 무섭게 긁어대는 게 마치 '미친 여자' 같았다고 한다. 나름 진지한 상황이었는데 그 표현을 들으니 웃겨서 아픈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아기가 아파서 울 때는 언제고,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인생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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