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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홀릭 Oct 26. 2023

제왕절개 후기 3일 차

신생아 중환자실 NICU 면회 후기

10월 19일 목요일


새벽에 눈이 떠졌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아기를 보러 가고 아기에게 수유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는 건지... 별 생각이 다 들면서 또 눈물이 흘렀다.



아침부터 울고 있다 보니 남편이 안아주며 위로해 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자주 우는 것 같고, 뭔가 이상한 것 같았다. 호르몬 때문인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한참 울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회진을 오셨다.

"산후 우울증인 걸까요?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의사 선생님은 산후 우울증이 엄청 흔한 일인데 다들 자각하지 못할 뿐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러면서 "지금 아기가 NICU에 가 있어서 더 그럴 거에요."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 말을 듣는데 또 눈물이 났다.

나를 보더니 선생님은 아기 면회가 언제냐고 물었다.

(NICU에 있는 아기 면회는 매주 월, 목 15분 동안이다.)



난 당연히 내가 못 갈 것이 분명하기에 오늘이라고 기운 없이 말했다.

(솔직히 화요일에 개복수술을 했는데 목요일에 외출을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산모님도 다녀오실래요?"

"진짜요? 그래도 되어요?"

"링거줄 빼면 이동 가능하니까요. 그럼 다녀오세요!"



솔직히 지금에야 말하는 거지만, 외출 자체가 정말 무리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우울해하니까 선생님께서 나를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려준 것 같다.

복대를 잘 차고 다녀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아기를 보러 갈 수 있다고 하니 갑자기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수액도 제거하고 패인부스터도 제거를 했다.

아기를 보러 가는 것이니 최대한 깔끔하게 가고 싶어서 남편에게 머리를 감겨달라고 부탁해서 머리도 감았다.

(수술 후 5일 동안은 샤워도 할 수가 없다 ㅠㅠ)



나는 제왕 절개 수술 당시에 아기를 본 게 전부였기에 제대로 아기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운이 나서 그런 것인지, 회복력이 빠른 것인지 수술 3일 차지만 혼자서 화장실도 잘 가고 옷도 잘 갈아입었다. 내가 봐도 정말 잘 걸어 다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남편과 드디어 아기를 만나러 갔다.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는 정말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만나러 와있었다.

(정말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아픈 아기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ㅠㅠ)

다들 명부에 이름을 적고 길게 줄을 서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수술한 지 만 2일밖에 안되어서 몸도 성치 않은데 환자복이 아닌 외출복을 입고 큰 복대를 한 채 줄을 서고 있자니, 갑자기 나 자신이 참 가엽게 느껴졌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순간에는 아기를 본다는 설렘도 설렘이지만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정말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친한 친구들에게도, 여러 지인들에게도 내가 아기를 보러 수술 3일 차에 아픈 배를 부여잡고 면회를 간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이 사실이 나를 정말 초라하게 만들고 자기 연민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아기를 보러 간 것인데 왜 그러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냥... 그때를 생각하면, 그때의 기분을 생각하면 많이 힘이 들고 자꾸 눈물이 난다.

나에게는 나름 큰 상처였던 것 같다.


혹시나 나의 지인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말할 수 없었던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아기는 아직 출생신고를 안 해서 이름이 없기에 000 아기(000은 내 이름) 이렇게 불렸다.

나와 남편은 '000 아기'라고 호명하자 니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니큐 안에는 많은 아기들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튼튼이를 볼 수 있었다.

튼튼이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입에 호스를 붙인 채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튼튼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고 귀여웠다.

작은 얼굴에 눈코입이 오밀조밀하게 있었다.

남편이 찍어준 사진에는 무쌍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쌍꺼풀도 있었다.



아기를 보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아기가 예뻐서 남편이랑 둘이서 넋을 놓고 쳐다봤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왜 내가 열 달이나 품고 힘들게 낳았는데 이렇게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인지, 왜 얘는 여기서 이렇게 불쌍하게 호스를 붙이고 있는 것인지...



내가 우니까 니큐 소속 간호사가 나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분의 눈빛이 잊히지가 않는다. 아마 이런 엄마들을 많이 봤겠지...



15분의 짧은 면회를 마치고 남편과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한참을 울었다.

그냥 모든 것이 다 싫었던 것 같다.



나의 출산을 축하해 주기 위해 연락해 주는 지인들에게 아기가 아프다는 사실을 숨긴 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도 싫고,


아기의 사진이 보고 싶다고 보여달라고 하는 지인들에게 내가 회복이 느려서 아기를 보러 가지 못했다며 다음에 보여주겠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싫었다.


사람들이랑 연락하는 것 자체가 싫고 마치 거짓말쟁이처럼 자꾸 진실을 피하게 되는 그 상황이 싫어서 핸드폰을 거의 보지 않았다.



자꾸만 눈물이 나는 게 진짜 산후 우울증인 것 같았다.

틈만 나면 우는 나 때문에 남편은 수시로 나를 관찰(?)하고 달래느라 고생이 많았다.

실제로 이 날 이후, 나는 결국 아기 없이 병원을 퇴원하고 조리원도 혼자 입소하게 되었다.

조리원에 입소하는 날도 아기 없이 혼자 가는 것 자체가 서러워서 울면서 입소를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조리원 3일 차가 되어서야 아기와 같은 건물에 있을 수 있었다.



참 세상 사는 게 내 맘대로, 또 예상대로 항상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아마 지금 내가 겪는 일들은 앞으로 내가 겪을 수많은 육아의 서사 중 하나일 뿐일 것이다.

이번 일을 토대로 더욱더 나 자신이 굳건해지길, 더 멋지게 성장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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