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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우카 Dec 04. 2021

남겨진 가을.

이 가을 동안 동네 마실을 다니며 빈한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감나무였다. 감나무마다 달려있는 까치밥이 보는 내내 마치 내 배가 불러오듯 포만감을 느꼈다. 며칠 유난히 추웠고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그리고 바라본 감나무에는 꼭지만 남아 있었다. 자신의 몸을 다 내어주고  마른 가지에 자신의 목을 드리운 감을 보니 왠지 숙연해지고 코끝이 따가워졌는데 작은 감꼭지 하나가 왜 그리도 숭고하게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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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대봉을 꺼내 한참을 바라보니 짧은 가을이 남긴 긴 여운으로 느껴져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든 열매에는 4계절이 담겨 있겠지만 감만큼 지혜로운 것이 있을까? 감꽃이 피는 봄. 열매가 몸을 키우는 여름, 수확하는 가을. 감추어진 겨울을 잊을까 봐 수확하고서도 한참의 시간을 들여 기다림을 배우게 한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겨울이 성큼 다가와 베란다 문조차 열지 못할 때 언제 즘 익을까 몇 번을 손으로 찔러보았을 물컹해진 감을 접시에 담아 입안에 가져간다. 봄날의 흙 같은 부드러움으로, 태양빛 닮은 붉음으로, 가을의 달달함과 겨울날의 차가움으로 입안에는 온통 4계절이 춤을 춘다. 어려서는 감 맛을 몰랐다. 나이를 먹을수록 부드러움을 찾아서가 아니라 이런 4계절이 담긴 맛을 알아가는 까닭에서인지 한개의 감이 건네는 풍요와 행복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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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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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로의 시조한귀를 읊조리며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를 떠올려보니 어린 날 감을 먹으면 변비가 생긴다고 못먹게 하시고는 당신들은 즐겨드시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일찍이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되어 그분들이 좋아하던 그 무엇하나 가져다 드릴 수 없어 나역시 저무는 노을과 글로 설워할 뿐이지만 계절은 돌고 나는 나이먹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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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동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무엇 한 가지라도 그 누군가를 풍성히 해 줄 수 있는 삶이 되길 원한다. 척박한 삶을 살아간다할지라도 몽돌사이 뿌리 내리고 잎을 피워낸 작은 잎사귀처럼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힘있게 살아내리라.  내 나이만큼 내 안에 간직된 4계절, 앞으로 또 몇번의 4계절을 보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계절의 힘으로 오롯이 열매맺어 전능자께 열납되기를 그런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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