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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Oct 13. 2024

기획의 다른 말을 알았다.

연희동에 있는 제로웨이스트 카페 보틀팩토리에서는 2018년부터 일 년에 한 번, 동네 가게들과 함께 일회용품 없는 생활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여섯 해를 맞이하는데 어쩌다 나도 기획단계부터 함께하게 되었는데, 매년 동네 주민으로 행사에 참여하다가 동네를 떠나고 나서도 기여를 하고 싶은 마음과 재미있게 동네 축제를 진행해보고 싶은 마음에 고민 없이 하겠다 했다. (처음 해보는 일에 거는 기대만 생각하고 안 좋은 점은 고민하지 않는 나답게 아주 쉽게 결정했지. 음하하)


7월부터 매주 한 번은 만나 회의를 통해서 이 행사의 목적, 주제, 컨셉, 의도 등 이 말이 곧 저 말이고, 저 말이 곧 그 말인 것 같은 차이를 헤아려가며(이 논의의 시간이 언제나 가장 길다) 슬슬 축제 기간을 정해야 할 때 즘 일정을 정하고, 슬로건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짜고, 키 디자인을 정하고, 섭외과 모집 리스트를 만드는 일련의 기획 속에서 할 일을 촘촘히 만들고 기획단에서 역할을 나누었다.


이 기획 일은 페이를 준다는 얘기도, 얼마 주냐는 돈과 무관하게 한 일이었다. 돈 얘기가 나오면 애매해질 것을 서로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돈을 받고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돈을 안 받으니 할 수 있었다. 신기한 얘기일 텐데,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자원봉사와 비슷할 수 있지만 기부자와 수혜자가 모호하다는 면에서 봉사도 아닌 것 같다. 돈을 받는다면 그 돈 값을 생각해서 여기까지만 해야지 하는 노동자의 기준점이 있을 테고, 사용자도 돈을 주었으니 여기까지 해줘야 하는 업무들이 있었을 텐데 그 경계가 보이지 않은 기획이었다. 이번 기획 일은 쌍방의 그런 선이 없고, 상사도 없다 보니 아침, 저녁으로 내 일을 들여다 보고 기획단을 북돋고 살피고,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을 돌보며 소통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게 되었다.


돌보는 일 중에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은 사람을 돌보는 일이다. 같이 하는 기획단의 말의 의도와 기분을 살피고, 회의에서 결정한 일정을 또 챙기고, 응원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일정에 맞춰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고, 참여자들의 설레고 두려운 마음을 잠재우며, 그 일을 위해 정보를 알려주는 메신저 역할은 곧 기획이 잘 이뤄질 수 있는 돌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행사 혹은 프로젝트를 대표해서 광고주와 연락을 주고받는 담당자를 보통 AE(Account Executive)라고 하는데 한국어로 '에이, 이런 것까지 해야 돼'를 줄여서 불리는 것 같다는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기획자 역할도 비슷하다.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심하게 돌보는 일을 할수록 피드백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직장에서 기획을 할 때도 비슷하지만 동네 행사를 주체하고 참여하는 내가 기꺼이 하고자 한 자발적인 일을 하는데 그 돌봄이 배로 더 들어가는 것을 알았다.


9월 말부터 2주간 진행된 유어보틀위크는 다이내믹하게 시작되었고 무사히 끝났다. 이 돌봄형 기획 일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는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곰곰히 회고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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