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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Sep 30. 2024

부모님과 추석 여행(2)

첫째 날 엄마의 고향 고창을 둘러보고, 둘째 날 변산 새만금 간척 해안도로, 군산 선유도를 돌면서 부모님, 특히 엄마는 쉴 새 없이 말을 하셨다. 주로 내가 운전을 하였는데 졸음을 쫓을 라디오, 블루투스 음악은 필요 없었다. 엄마는 본인이 보는 풍경을 즉각적으로 중계하며 감정을 수시로 전달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 꼬리를 본인이 물고 과거의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다른 사람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었다. 특히 기승전'아빠로부터 느낀 서운함'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결론으로 가는 것을 예상을 하는지, 아빠는 엄마의 수다가 시작되면 입을 닫았다.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부부생활이란 무엇일까.


셋째 날은 남원으로 이동하는 날이었는데, 아침 구시포 해수욕장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아빠와 산책을 하였다. 잔잔히 걷히는 잔 구름들과, 바다 반대편으로 떠오르는 태양과 멀리서 보면 귀여운 갈매기 떼들이 조화로웠다. 함께 걷기만 하고 나의 외마디 감탄사 외에는 아빠와 나눈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숙소로 들어가자마자 엄마의 폭풍 토크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아침 먹고, 짐 정리하고 목적지로 출발하였다.

서해의 매력을 알았다


남원으로 가기 전 전주 이모가 있는 납골당과 나는 뵌 적 없는 외삼촌을 기리는 임실 호국원을 들렀다. 엄마는 이모와 외삼촌의 비석 앞에서 울고 웃었다. 우리처럼 죽은 이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복잡한 표정들을 보며 나도 그런 표정이겠지, 어떻게 애도하면 좋은 것인지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충분히 죽은 이를 생각하고 나도 모르게 나오는 감정을 억누르지 말아야겠다, 이성을 찾으려 나를 채근하지 말아야지,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야지.


임실 호국원에서 연휴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것을 예상했는지 임실 치즈와 그 치즈를 넣은 피자를 한편에서 팔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허기진 배를 피자로 채웠지만 오직 밥만을 고집하는 아빠는 아침에 밥을 든든하게 먹었다며 피자는 먹지 않았다. 분명히 배고플 시각일 텐데 아빠도 참 대단하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남원 인월에 도착했다. 아빠는 시장터에 있는 국밥집을 발견하고 아주 좋아하셨다. 국밥을 맛있게 먹고 배 둥둥 치며 나오는데 아빠의 초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났다. 아빠도 신기해하고, 그 친구분도 화들짝 놀라며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셨다. 그 둘을 보는 엄마와 나도 신기해하며 추석은 추석이다 싶었다.  


이번 추석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아빠의 선대를 기르기 위해 만든 제단이 있는 곳으로 갔다. 엄마는 본인의 고향을 돌아볼 때랑 다르게 아직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셔오지도 않았는데 제단을 굳이 봐야 하냐며 반기지 않았지만 막상 도착하니 제일 꼼꼼히 돌아보며 그 근처에 사는 작은할아버지 댁에 들러서도 아빠보다 더 반갑게 인사하며 작은할아버지 가족들 하나하나 안부를 건네셨다. 엄마는 아빠를 싫어하지만(?) 좋아하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부부 생활이란 무엇인가 다시금 질문을 떠올렸다.


작은할아버지 댁에서 나와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여행 마지막 숙소인 휴양림에 도착하였다. 나는 이틀 동안 운전하느라 피곤했는지 낮잠을 쓰러지듯 잤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나 엄마와 아빠는 고창에서 산 말린 태양초 고추를 일일이 닦고 있었다. 부모님과 이 여행 옵션에는 명절 노동은 무조건 추가되는 것이었구나 깨닫는 순간을 보며 나도 엄마가 해준 맛난 김치를 먹으려면 이 노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했다. 그렇게 셋이서 말린 고추에 묻은 먼지를 일일이 닦고, 꼭지를 잘랐다.


노동이 끝나고, 흑돼지를 구워 저녁을 먹었다. 지리산 산자락 맑은 공기를 맡으며 숙소 툇마루에 앉아 구름 사이로 보이는 보름달을 보며 이번 여행에서 뵌 가족들의 안녕과 내 부모님의 건강을 빌고 또 빌었다.


다음날, 엄마에게 그림을 그리라 부추겼다. 아침 먹고 누워 쉬고 있는 엄마에게 계속 눕지만 말고 엄마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이럴 때 그려봐야 되지 않겠냐고 계속 졸라댔다. 못 이긴 척 엄마는 일어나서 숙소 가까운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자신이 보는 풍경을 종이에 옮겨 담았다. 그런 엄마를 나는 사진으로 담았다. 미션 성공이다. 하하하

아직 미완성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남원 시내에서 커피 한잔을 나눈 후, 부모님과 헤어졌다. 부모님은 울산으로 가고, 나는 남원에서 살 때 지냈던 언니들을 만나 근황을 나누고 서울로 향했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밥을 먹으면서 이동 중에도 말린 고추를 닦으면서도 엄마와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물론, 들었던 얘기도 또 들었다. 엄마가 대화 지분의 90%를 가져갔지만, 아빠도 자신의 고향에서는 종종 선명히 떠올랐는지 어린 시절 얘기를 하셨다. 이런 시간이 앞으로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엄마와 아빠 둘이 얘기를 많이 한 진귀한 경험을 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 순간이 너무 그리울 것 같아 나는 두 분의 이야기를 아주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정말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 추억을 또 그리워해야겠다.  


현재, 과거, 미래의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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