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무엇을 그릴까 영감을 얻기 위해 아이패드를 붙잡았다.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러 사진을 보다가 처음으로 설치 미술(?)을 해본 경험을 쓸까 했는데 이미 책방 운영 일지에 적어 브런치로 발행한 것을 확인하고는 패스. 패드 앨범에서 다음 악상(!)을 찾아볼까 했는데 동생이 남기고 간 그림을 발견했다.
동생이 2020년 1월 23일에 남겨놓은 그림이었고, 이 그림을 보니 그날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아이패드와 펜슬을 사고 얼마 안 되어 본가에 갔는데 동생이 펜슬을 보고 이걸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기꺼이 그려보라 아량을 베풀었고 동생을 신난 표정으로 방으로 갖고 가 한참을 그렸던 것 같다.
마을 고양이와 공동체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려놓았다. 처음 펜슬로 그렸을 텐데 잘 그렸네.
관심 있는 피사체를 애정을 갖고 그리면 못 그릴 그림이 없겠지.
그러고 보면 동생도 미적 감각이 있고 줄곧 추구한다. 요즘은 그림을 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바이올린에 열성적으로 혼을 태우고 있다. 직장을 다니며 생기는 스트레스를 태우는 혼인 것 같지만, 출근을 조금 일찍 해서 근처 피아노 교습소를 빌려 바이올린을 켜고 일을 시작한다거나 퇴근 후 연습을 하는 등 몇 년 동안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빵도 잘 만들고, 농사도 스스로 잘 짓는다. 그래서 엄마는 동생보고 무인도에 가서도 잘 살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아주 명확히 구분하고 표현한다. 개인주의 성향이 우리 가족 중에 단연 으뜸이다. 나와 어릴 때부터는 성향이 다르고 그다지 통하는 지점이 없어 본가에 함께 살 때는 싸우기도 엄청 싸웠다. 싸움의 이유는 나는 양보했는데 동생 너는 왜 양보 안 하냐고 뭐라 했던 것 같고, 동생은 네가 양보해 놓고 왜 자신에게 강요하냐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와 동생은 다른 사람인데 장녀 스트레스를 동생한테 푼 것 같기도 하다. '나를 도와줘'라는 말 대신 '너는 못됐어'라고 말해버렸지. 내가 손해 본다고 생각했나 보다. 관계에서 손해 본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상대방을 보기 힘들어진다. 사실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 내 안에서 감가상각이 이뤄지고 지레짐작하게 되어 평안한 내 마음을 좀먹게 된다. 그러면서 실언을 하게 되고 더 안 좋아지는 거겠지.
아무튼, 동생과 따로 살게 되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