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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Aug 24. 2024

소리가 그린 그림  

'자, 오늘은 무엇을 그려볼까'

바닥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끼르르륵 안쓰런 소리를 내는 선풍기 소리를 들으니 악상이 떠오르진 않고 문득, 연필을 잡고 싶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필통 속엔 연필깎이로 깎은 새초롬한 연필들이 한가득이었다. 수업시간 연필로 받아쓰기를 하다 보면 연필심이 닳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할 숙제 중 하나도 연필을 깎는 일. 고학년으로 가면서 샤프도 쓰고, 펜도 쓰다 보니 연필은 필통 속에 사라졌고 미술 시간에 잡는 특별한 도구가 되었다.


그 도구를 오랜만에 꺼내 칼로 연필을 깎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읽었던 '방망이 깎는 노인' 수필도 생각나네. 남편이 아내 심부름으로 다림질에 쓰는 방망이가 닳았으니 퇴근길에 방망이를 깎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길에서 어느 할아버지께 방망이를 맡겼는데 너무 오랜 시간 깎아줘서 이 남편은 기다리는 데 짜증이 나면서 그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속으로 했었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방망이를 아내에게 주니, 아내는 어쩜 이리도 세심하게 잘 깎았는지 감탄을 하며 미션을 완수한 남편에게 폭풍 칭찬을 했고, 그 할아버지를 안 좋게 생각한 자신을 반성한 내용으로 기억한다. 그 글의 교훈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는 장인 정신을 방망이 깎는 노인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읽고 난 뒤 몇 십 년이 지나도 이렇게 기억나는 건 방망이 깎는 노인이 일을 대하는 태도에 동경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연필을 방망이 깎듯 세심하게 깎고는 작은 종이를 꺼내 슥삭슥삭 마음과 눈이 가는대로 선과 도형을 그었다. 이리저리 긋다보니 내가 원하는 그림이 되었다.


스스슥, 슥삭슥삭, 쓰윽쓰윽. 쓱쓱쓱, 사각사각, 스스스스스스 -  연필 소리가 그린 그림이라 봐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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