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끔찍한 대화를 경험했다. 근본을 중요시하는 사람과 나눈 근본 없는 대화였기에 이 기억을 반추할 때면 고개를 으스스 떨 것 같다. 그래서 말보다 글로 정리하면서 느낀 감정을 소화하고 싶다. 어떻게 정리할지 잠시 보류하고, 본가에 올 일이 왔다가 방에서 잠시 컴퓨터를 켜고 부팅이 되는 시간에 책상 서랍을 열었다.
책상 서랍에는 막내 동생의 학창 시절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영어 단어를 외우려 쓴 메모, 여분의 단추들, 안 쓴 지 십 년은 넘은 듯한 반창고, 크림을 사고 받은 샘플 향기, 녹이 쓴 클립 등을 보니 흠칫 이것들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종이 위에 그림 재료를 얹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기 방식, 콜라주를 써먹을 생각이다. 의도가 없이 내 상반신이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에 홀로그램 스티커도 붙여 콜라주 재료로 올렸다. 그저 무기물인 것들이 종이 위로 올리니 각각의 오브제가 되었다.
어떤 그림이 될지 그리는 나조차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상상으로 그려질 것이고 내가 만족할 때까지 그릴 것이다. 그림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나에게 주는 힘이 꽤 크다. 이 그림으로 끔찍한 대화 따위 잠시 기억에서 잊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