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보다 오래 서 있는 사람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말》 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by 엘리킴


언제부터였을까
내 다리의 감각이
하루의 경과를 알려주기 시작한 건.
지나가는 시간은 벽시계에 남고
내 시간은 발목에 남는다.


사람들이 지나간다.
어깨가 스치고
눈길은 닿지 않는다.
존재는 공간을 차지하지만
인식은 그보다 느리게 온다.


나는 말을 걸지 않고
말을 듣지도 않는다.
대화는 내 역할이 아니고
질문도, 설명도, 웃음도
모두 타인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관찰한다.
무의미하게 보이는 반복 속에서
가끔, 사람을 읽는다.
표정의 균열, 동작의 망설임,
그 모든 것들이 말이 되기 전에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가끔 내 옆에 자판기가 있다.
그건 버튼 하나로 선택을 유도하고
결과를 내놓는다.
나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
선택받지도, 눌리지도 않지만
누군가는 내가 있는 걸 바라며
안심한다.


그것이 나다.
말 없는 안심.
이동 없는 이동.
존재하지만 소음이 되지 않는 사람.


그리고 하루가 간다.
등 뒤의 벽이 서서히 식어가고
눈동자 속 빛도 하나둘 사라질 때
나는 자리에서 물러난다.
단 한 번도
‘수고하셨습니다’란 말을 듣지 못한 채.










from. 보안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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