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나를 스쳐간 얼굴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누군가의 시선 옆을 지난다.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채,
표정조차 기억되지 않은 채.
거울도 아닌 내가
수없이 비춘 얼굴들은
내가 누구였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았다.
바쁘다는 말은
인사보다 익숙하고
침묵은 이해라는 이름으로
서둘러 지나간다.
나는 존재했지만
누구의 삶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인물도 아니고, 배경도 아니고,
그저 화면 바깥의 바람처럼.
문이 닫히고
버스는 떠나고
카페는 조용해지고
눈을 마주칠 수 있었던
짧은 틈들도 사라진다.
누구도 잘못이 없다.
그래서 더 지워진다.
당신이 나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보이지 않았기에.
내가 투명해지는 일은
이제 별로 아프지 않다.
다만 언젠가
한 번쯤, 아주 느리게
누군가의 눈동자 속에
내가 잠시 머물 수 있다면.